송주호 (야구 선수)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주로 좌익수를 보지만 중견수우익수도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다.

선수생활 초기[편집 | 원본 편집]

서울 중앙고 출신의 2루수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 나왔으나 지명받지 못하고 삼성 라이온즈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이후 퓨처스 리그에서 전천후 내야 백업요원으로 활동했으나 단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군에서도 꾸준히 기회를 부여받았음에도 성적이 좋지 않아 두터운 삼성 선수층을 뚫지 못하였다. 2007~2010시즌동안 퓨처스에서 한 번도 3할 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 발은 빨랐지만 그거 외에는 돋보이는 것이 없었고, 결국 2010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후 중앙고 시절 감독이었던 은사 계형철 당시 SK 와이번스 코치의 추천으로 SK의 마무리 캠프에 동행하였으나 SK 역시 삼성에 버금가는 두터운 선수층의 팀이었고, 김성근 감독은 최종적으로 송주호를 발탁하지 않았다.

이후 군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입대, 하필 특전사에 배속되는 불운을 겪었으나 지휘관에게 야구 연습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 이에 감복한 중대장이 특별히 허락하여 남는 시간마다 연습에 매달렸다고 한다. 2012년, 군복무 도중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창단 소식을 듣고 입단 테스트때 휴가를 써서 나와 필사적으로 어필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이때는 합격 통보를 함으로서 연말에 제대 후 정식으로 고양 원더스에 합류했다.

고양 원더스 ~ 한화 이글스[편집 | 원본 편집]

고양 원더스에서 송주호는 야구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는데, 바로 전격적인 포지션 전환이었다. 내야수로서 송주호가 다른 선수에 비해 뚜렷한 이점이 없다고 본 김성근은 송주호의 빠른 주력에 주목, 외야수로의 컨버전을 권유했고 송주호가 이를 받아들인 것. 덕분에 팀 합류 후 2013년 초반까지 경기가 없는 날에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말 그대로 펑고만 받으며 외야수로서의 강훈련을 소화했다.

한편, 2013시즌 한화 이글스는 외야펜스를 뒤로 밀어낸 반면 외야수들의 실력이 도저히 이를 만회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1] 이러한 1군 외야사정을 본 2군 감독 이정훈은 구단에 건의하여 5월 31일, 전격적으로 송주호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이후 2군에서 확실히 뛰어난 수비능력을 보여주며대신 타격은 여전히 암울했다. 1달여만에 1군으로 콜업, 주로 대주자 요원으로 활동했지만 아직 1군에서 뛰기엔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가 시즌을 끝냈다.

대신 2014시즌에는 이정훈 감독의 집중지도와 꾸준한 기용으로 2군의 톱타자로 대활약하며 퓨처스리그 도루왕을 차지했다. 한화가 뒤늦게 건설한 서산 야구장의 혜택을 제대로 본 선수 중 한 명인 셈. 그러나 시즌 중반부까지 1군에 콜업되지 못하다가 9월 엔트리 확장과 함께야 콜업되어 펠릭스 피에가 부상으로 빠진 중견수 자리를 무리없이 소화하며 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그러니까 그놈의 타격만 어떻게든 좀...

2015시즌에는 한화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과 세 번째로 만났다. 부임 소식을 듣고 뛸듯이 기뻐했다고.그리고 오키나와 캠프에서 신나게 펑고를 받았다. 시즌 개막 후에는 나이저 모건의 부진으로 공백이 생긴 외야수 자리 하나를 무난하게 차지하며 좌우중견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출장, 여러 차례 슈퍼 캐치를 선보이며 안타성 타구를 죄다 잡아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특히 4월 26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안타성 타구를 3번이나 잡아내며 팀 승리의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타격은 속을 타들이게 해서 1할 초반에 그치고 있고, 팬들도 그에게 전혀 안타를 기대하지 않고 있다.그런 주제에 4월 10일 롯데전에서 심수창의 승리를 강탈하는 적시타를 쳤다! 그저 수비만 잘해줘도 된다는 반응. 그리고 4월 29일 기아 타이거즈전에서 송주호 대신 공격력 강화를 위해 기용한 송광민이 대형 참사를 일으키며 팀 패배의 원흉이 되자 안타 안쳐도 되니 송주호 기용하라는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그 뒤 타율이 1~2할을 오가는 암울한 공격력을 보이고 수비나 주루에서도 이럴다할 장점을 나타내지 못하며 시즌 말기에는 방어율 7점대 선발투수 송은범, 2할 극초반에 실책으로 경기 말아먹는 권용관, 마찬가지로 2할 초반 타율의 신성현 등과 함께 김성근의 양아들로 전락했다. 2016 시즌에는 아예 타율이 1할 언저리까지 떨어지며 기회도 많이 받지 못했고, 7월 이후에는 아예 1군에 출장하지 않고 2군 붙박이가 되었다.

17 시즌에는 아예 육성선수로 전환되었고, 앏디 얇은 한화 팜 특성상 2군에는 꾸준히 나왔으나 김성근 감독의 경질로 더욱 더 자리가 없어졌다. 그야말로 프로에서의 노력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슬픈 사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선수.

각주

  1. 굳이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연경흠오재필은 부상으로 은퇴, 강동우는 고령으로 기량이 급격히 저하, 원래부터 수비가 안 좋았던 최진행정현석, 억지로 외야수 전향했다가 실패만 맛본 김태완까지 말 그대로 절망적이었다. 김경언고동진이 그나마 고군분투했지만 이 둘도 딱히 좋다고 하긴 힘들었다. 그냥 평균 이상은 해준다는 것에 감지덕지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