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노 토지코

蘇我(そが)  () 屠自古(とじこ)
소가노 토지코
Soga no Tojiko
Th13Tojiko.png
동방신령묘의 토지코
이명 신의 후예인 망령
종족 망령
능력 벼락을 일으키는 정도의 능력
직업 불분명
사는 곳 몽전대사묘
위험도 매우 높음
인간 우호도 낮음
주요 활동 장소 불명
테마곡
테마곡 목록
테마곡 / 이명
테마곡
등장 작품 곡명
동방신령묘
(5면 필드)
몽전대사묘
(夢殿大祀廟)
이명
명칭 등장 작품
신의 후예인 망령
(神の末裔の亡霊)
동방신령묘
동방구문구수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동방신령묘의 5면 중보스이다. 고대 일본의 호족인 소가 가문의 망령이다.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를 따르는 자였으나, 그녀가 결국 망령이 된 것은 후토가 원인이다. 그녀는 사후 항아리에 혼을 깃들어 시해선으로 부활하려 하였으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해도 멀쩡한 항아리를 준비했으나 이후 모노노베노 후토가, 모노노베 일족이 소가씨에 의해 멸망한 것에 열받아 굽지 않은 항아리로 바꿔치기를 했다. 그곳에 혼이 깃든 토지코는 세월이 흘러 사그라진 항아리 때문에 본체를 잃고말아, 결국 망령으로 부활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망령인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인간의 육체 따위는 쉽게 부서지니까 필요없다고 느끼는 중.

소가 가문과 모노노베 가문은 불교를 둘러싸고 싸웠지만, 후토와 토지코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둘 다 불교를 싫어하고 있다고.

모티프 및 소재[편집 | 원본 편집]

직접적인 모티프는 쇼토쿠 태자의 두번째 아내인 토지코노 이라츠메(刀自古郎女). 소가 가문의 가장 유명인인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딸이자 모노노베 가문을 방계로 한다. 소가 가문은 도래인(대륙에서 넘어와 귀화한 사람)이라고 하며, 불교에 반대한 모노노베 가문을 멸망시키고 신앙으로 정권을 장악하여 나라 시대의 약 60년을 통치하였다.

그러던 643년, 스이코 덴노(推古天皇)가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채 사망하여 소가노 우마코의 아버지(즉, 토지코의 할아버지)인 소가노 이루카는 이 기회를 삼아 아버지 소가노 에미시(蘇我蝦夷)가 받은 오오오미(大臣)의 권력을 써 후루히토(古人)를 내세워 조정을 모두 장악하려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미 쇼토쿠 태자의 친자인 야마시로(山背)를 즉위시킬 생각이었고, 이에 찬동하여 다른 황족인 나카(中)를 앞세운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1]가 반 소가씨(反蘇我氏) 연합을 조성한다.

645년, 결국 카마타리는 아스카 이타부키궁(飛鳥板葺宮)에서 소가노 이루카의 목을 따는데 성공하였고, 일종의 쿠데타 진압에 실패한 에미시가 끝내 자살하면서 소가 가문이 스러지고 만다. 승리한 카마타리는 조정으로부터 내신(内臣)으로 임명되어 군사직 일임을 맡게 되었고, 황족 나카(中)의 측근으로 서서 삼촌인 카루(経)를 코토쿠 덴노(孝徳天皇)로 즉위시킨 뒤,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을 펼쳐 섭정이나 봉건제가 아닌 덴노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을 시도하게 된다.

다만 암살당한 이루카는 원령이 되어 벼락을 내리치며[2] 카마타리 앞에 돌연 나타났고, 이에 화들짝 놀란 카마타리가 토우미네(多武峰)의 숲까지 냅다 도망쳐[3] 원혼을 달래기 위한 신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때의 고생으로 몸져누워 669년에 사망하였고, 사람들은 이를 이루카의 저주라고 수근거렸다.

능력[편집 | 원본 편집]

벼락을 일으키는 정도의 능력
雷を起こす程度の能力

화살탄이 지그재그로 내려온다.

작중 행적[편집 | 원본 편집]

동방신령묘[편집 | 원본 편집]

공식 프로필[편집 | 원본 편집]

  1. 훗날, 후지와라노 카마타리. 후지와라노 모코우의 할아버지이다.
  2. 토지코의 벼락 탄막 및 스펠카드 '이루카의 벼락(入鹿の雷)'의 모티프.
  3. 그래서 '더 이상 오지 않겠지(もうこない, 모우코나이)'라 하여 "모우코바야시(茂古林)"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는 카더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