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갑문

서해갑문(西海閘門)은 북한남포특별시 서쪽 대동강 하구에 위치한 갑문으로, 1896년에 완공되었다. 총 8km 길이의 하구둑과 3개의 갑문, 35개의 수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측의 갑문을 통하여서 5만톤급의 선박까지 출입이 가능하다. 이 서해갑문 완공 이전에는 대동강의 상류측에 미림갑문(1980년 7월 완공), 봉화갑문(1983년 4월 완공), 동암갑문이 건설되었다. 여담으로 대동강에는 여러 갑문이 있는데 이 서해갑문은 상류 방향에서 다섯번째로 위치한 갑문이다. 갑문 내부의 담수능력은 27억톤에 달한다.

건설목적[편집 | 원본 편집]

이 갑문과 하구둑을 건설한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대동강의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 : 대동강은 서해상으로 열려있는 일종의 삼각강으로 하구의 수위가 깊고 상류까지도 조수 간만의 차이가 매우 심한 강에 속한다. 이 때문에 남포항으로 출입하는 선박들은 간조시에는 상당히 출입이 제한되어 대동강의 수위를 어느 정도 높이고 일정하게 유지하여 선박의 통과 가능 용량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이 갑문 상류에 위치한 남포항의 경우 갑문 완공 전에는 2만톤급 선박이 한계였으나, 이 갑문이 완공된 이후에는 이 갑문의 설계용량인 5만톤급 선박까지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 해수의 역류를 막아 담수화를 시킨다 :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다보니 바닷물이 강을 타고 꽤 위쪽으로 많이 역류해 오기 때문에 주변 농경지에 이 물을 그대로 공급하였다가는 바로 염해가 발생하고 만다. 하구둑으로 강을 막아서 강물을 바로 농업용수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도 하구둑의 건설 목적의 상당수는 이런 목적이 있다.
  • 둑을 건설하면서 주변을 매립하여 농경지를 추가로 확보한다.(북한측에서 주장하기로는 30만 정보라고 한다)
  • 군사안보적 이유 : 서해 백령도에서 대동강의 조류를 타고 평양으로 침투하는 남한측의 간첩을 차단하고 평양의 치안을 지키려는 목적. 실제로 이 갑문이 없으면 밀물과 썰물의 물때만 잘 맞추면 평양까지 어렵지 않게 침투가 가능하기는 하다.
  • 남포에서 순천까지의 해상운송의 발전.
  • 평양을 수해에서 완전히 해방시킨다.

실상[편집 | 원본 편집]

이 갑문은 1981년 공사를 시작하여 5년만인 1986년에 완공되었다. 북한은 당시 이 갑문을 3년 안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뭐라고? 1개 군단 규모의 군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수만명의 노동자를 갈아넣어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사실 북한측에서 예상한 건설기간은 20년이었다고한다. 당연히 이렇게 했으면 문제가 되었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당시는 북한의 령도자 혹부리우스의 나이가 70세가 다 되어가던 시기로 "수령님 살아생전 완공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남들이 10년, 20년 걸린다면 우리는 3년 5년 내에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공사기간의 단축을 지시한 것.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자연적인 조건도 상당히 악조건이었는데 사실 대동강의 하구 폭은 8km에 달하는 삼각강으로 말이 좋아 강 어귀지 사실상 그냥 바다나 다름없는 구간이었다는 것. 거기에 삼각강의 특성상 수심이 30m를 넘나들고, 유속도 초당 10m를 넘나드는 곳이라 무턱대고 공사를 해서는 안 되는 구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동원된 군부대라고 뭐 방법이 있을리가. 그냥 까라면 까는 수밖에... 덕분에 수많은 인명사고를 내 가면서 무모한 공사를 강행하였고, 북한 당국은 이 인명사고를 영웅과 훈장으로 그냥 덮어버렸다. 보통 인명피해가 하루 2~3명에서 많게는 7명꼴로 매일같이 발생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막장 공사였던 것. 실제로 이 서해갑문 공사가 끝나고 나서 북한에서 엄청나게 많은 "영웅"들이 생겨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인명피해는 그 이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공사비도 북한 당국은 40억달러가 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20억달러가 더 들어간 60억달러 이상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저 시기가 북한의 경제가 슬슬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시기라 가뜩이나 부족한 딸라를 강과 바다에다 꼬라박은 셈이다.

어쨌건 우여곡절과 인력을 말 그대로 갈아넣어 완공했으면 이걸 제대로 써먹어야 하는데 진짜 문제는 완공 이후에 벌어진다. 일단 농경지를 확보하고자 하였으나 대동강의 수위가 상승하면서 오히려 주변 농경지쪽은 침수가 발생, 농경지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거기에다 강의 수위가 상승하는 덕분에 평양이야 수해가 나지 않게 되었지만 대신 매년 주변의 멀쩡한 평야지대도 침수되면서 오히려 흉년을 불러와서 식량난을 가속화시켜버린 것이다 실제 고난의 행군의 원인이 되었던 식량난에 이 서해갑문이 한 몫을 했다고 하기도 한다. 거기에 남포항쪽은 밀물로 인한 염분으로 겨울에 심하게 얼어붙지는 않는 항구이지만 이 갑문이 완공되고 나서 오히려 유속이 정체되고 염도가 낮아지면서 얼음이 더 잘 얼게 되어버렸다. 이 때문에 겨울철에 남포항에 출입할 수 있는 선박은 흘수가 0.9m이상인 대형선박으로 제한되어버리게 되었다. 거기에 진짜 문제는 북한의 전력난으로 이 갑문을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문을 만들었는데 왜 통행을 못하니

이외에 20년짜리 공사를 5년만에 완공시켜놓았으니 그 공사가 제대로 되었을리가... 당연히 부실공사로 진행되었으며, 실제로 강 하류 바닥의 세굴현상이 심각해져 둑이 어느 순간에 한번에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인데다가 물이 새는 것은 덤.(차라리 새는 것이 하구둑의 안전에는 도움이 될 지경이다. 새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수압을 못견디고 둑이 그대로 무너진다나...) 추가로 대동강 하류의 물이 고인 물이 되면서 수질오염이 심각해지면서 대동강 숭어가 멸종했다고 한다.

결국 언제 둑이 무너져 버리는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1개 건설사단이 이 하구둑 인근에서 항시 대기중이라고 카더라

기타 사항[편집 | 원본 편집]

이 갑문 인근의 피도라는 섬에는 피도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 갑문이 어찌나 자랑스러웠는지 피도등대를 기념탑처럼 만들어 놓았다. 주체탑?

관련 문서[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