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납동 토성

서울 풍납동 토성
건축물 정보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1동 72-1번지 외
대지면적 402,552.4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11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서울 풍납동 토성(서울 風納洞 土城)은 한강변에 남아있는 초기 백제시기의 토축 성곽으로, 주로 풍납토성이라 부른다.[1] 원래는 둘레가 4㎞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1925년에 발생한 홍수로 성벽의 남서쪽 일부가 잘려나가 현재는 약 2.7㎞ 가량 남아있다.

특성[편집 | 원본 편집]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북동-남서방향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이다. 성벽의 축조는 돌이 없는 평야지대에서 성을 쌓는 판축 기법을 이용한 방식으로, 고운 모래를 한층씩 다져 쌓았으며 높이는 일정하지 않다. 동쪽에는 4곳에 출입문으로 여겨지는 흔적이 남아있다.

몽촌토성과의 관계[편집 | 원본 편집]

이 풍납토성 남쪽 방이동에는 거의 유사한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몽촌토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몽촌토성의 역할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데 여러 의견 중 풍납토성이 평시용 성곽이고 몽촌토성을 전시용 성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기각지세의 성곽 배치는 고구려 국내성에서 볼 수 있는 왕성-산성의 배치와 유사한데 이는 초기 백제 지배층이 고구려에서 남하한 세력이라는 점에 근거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논란[편집 | 원본 편집]

이 성의 성격을 두고 학계에서는 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나는 초기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이라는 의견과, 다른 하나는 그냥 단순한 방어용 토성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이 성이 위례성일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쪽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나 이들과 연결된 곳이 꽤 많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과 유적등을 보아서 위례성이 나올 가능성이 꽤 높은 상황이고 발굴을 할 때마다 새로운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 성 안 구역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버릴 경우 재산권 행사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성 내부 건물들에 대해서는 재건축은 아예 꿈도 못꾸는 상황이 되기 때문. 즉 재산권 행사의 권리와 문화재 보호라는 공공의 이익이 충돌하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각주

  1. 공식 명칭은 광주 풍납리 토성이었다가 2011년에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