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일반적으로 유럽의 역사를 말한다. 서양사라고 표기가 된 유래는 일본이 번역과정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동양사로, 유럽지역의 역사를 서양사로 번역하였다. 일본식 표기는 한국에도 전래되어 이러한 것이 굳혀졌으나 최근에는 그 지역마다 역사를 구분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유럽사, 동아시아사 등으로 표기하려는 운동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유럽사는 서양사로 동북아시아사는 동양사로 규정하고 나머지 지역의 역사를 지역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1]

목차[편집 | 원본 편집]

고대 지중해 세계로마 제국[편집 | 원본 편집]

고대 지중해 세계는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로마의 역사를 말한다.

그리스 문명, 에게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에게 해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은 고유의 전통을 자랑했고, 트로이 전쟁을 치를 정도로 국력이 강성했다. 그러나 도리아인들의 남하로 미케네 문명은 몰락했다. 이후 도리아 인들이 선주민들을 장악하는 구조가 되었다.

폴리스의 형성은 도리아 인들의 남하와 선주민들 간의 충돌과정에서 생겼다는 이론과 그리스 지역이 척박하고 식량생산이 부족하여 약탈이 빈번했고, 이 약탈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었는데 이 모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된게 폴리스라는 이론이다.[2] 중요한 것은 폴리스가 형성되었고, 이 폴리스를 중심으로 그리스 세계가 형성되었다. 폴리스라는 소규모 도시였고, 그리스 영지가 척박했기에 식민활동이 왕성했고 해상활동이 활발하였다. 이로 인해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였다.[3] 번성하던 그리스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계기는 페르시아 전쟁으로 인한 것이었다. 3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저항하였다. 그 중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퇴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그로인해 아테네는 반페르시아 동맹인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 델로스 동맹은 점차 아테네가 지배하는 구조로 변화되었고, 이는 다른 폴리스들에게 반기를 유발시킨다. 이에 스파르타가 아테네에 저항하였다.(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쟁은 지지부진하였지만 아테네의 몰락으로 끝을 맺었다. 스파르타가 그리스 세계를 장악하자 아테네보다 더 가혹한 정치를 펼치고 이는 불만세력을 만들게 되었다. 테베가 스파르타에 맞서 일어났고, 아테네도 동시에 일어났다. 테베는 에포미논다스의 사선진을 통해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몰락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리스 세계가 서로 반목하는 사이에 북부 마케도니아 왕국이 강성해진다.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 시대에 이미 그리스 폴리스의 상당수를 장악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알렉산더는 소아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평원, 인도 서부까지 장악하여 대제국을 건국한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후계자 없이 일찍 죽었고, 알렉산더의 4명의 장군들이 제국을 분할하였다. 이로써 헬레니즘 시대가 열렸다.

로마는 그리스 폴리스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로마는 로물루스라는 전설의 형제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충 폴리스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본다. 로마는 주변의 지역을 장악하면서 성장하였는데, 로마가 가장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카르타고와 서지중해를 두고 싸운 포에니 전쟁이었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북아프리카와 히스파니아(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하게 되었다. 방대한 영토를 얻은 로마는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갈리아를 정복하였고, 이후 그리스, 이집트 동지중해 등을 장악해 나갔다. 로마 영토의 확대는 로마 공화정의 모순을 심화시켰고, 결국 로마 공화정은 무너지고 로마 제정이 등장하였다. 약 200년에 걸친 로마 제정은 나름대로 잘 돌아갔지만 이후 무능한 황제와 군인황제 시대를 거쳐 로마는 피폐해졌다. 이 로마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많은 황제들이 노력했지만 결국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되었고, 476년 서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로마제국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4]

중세 유럽[편집 | 원본 편집]

흔히 유럽 중세는 서로마제국이 몰락한 476년부터 동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의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그래서 중세 천년이라고 불린다.

이 시기 중세를 지배했던 것은 교회와 봉건제이다. 그러나 이 두 제도는 유럽 중세가 시작되는 시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유럽 중세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등장하였다. 유럽 중세는 그리스도교의 지도와 로마적 유산의 기반 아래 게르만, 노르만 같은 이민족들의 문화를 융합하여 발전한 시대이다. 과거 이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암흑시대였으나, 최근 들어서 이 시기에 대학이 존재했었더는 점과 학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 시대가 암흑시대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 서로마 지역으로 많은 이민족들이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 게르만 계통의 프랑크 족은 지금의 벨기에 근방을 중심으로 독일과 프랑스 지역으로 팽창하였다. 이후 성립된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회와 협력하여 로마제국의 대관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은 당시 왕국의 계승법에 따라 3명의 자식들에게 분할되었고, 각각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로 분단되었다. 동프랑크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발전하였고, 서프랑크는 프랑스 왕국, 그리고 중프랑크는 동프랑크와 서프랑크 사이에서 있다가 사라졌다.

이후 노르만 대이동을 거쳐 이슬람, 마자르 족의 공격을 물리치고 서유럽이라는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이후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은 그렇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의 경우 레콩키스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15세기 중엽에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거의 제거하였다. 이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몰락하고 비잔틴의 학자들이 대거 이탈리아로 유입되고, 또한 15세기 말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유럽은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근대로 가는 길[편집 | 원본 편집]

근대정신의 등장[편집 | 원본 편집]

혁명의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이념의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제국주의 시대[편집 | 원본 편집]

제1차 세계대전[편집 | 원본 편집]

전간기[편집 | 원본 편집]

제2차 세계대전[편집 | 원본 편집]

냉전[편집 | 원본 편집]

탈냉전[편집 | 원본 편집]

21세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과거에 비해 지역표기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아무래도 나이드신 분들이 다 교체되기 전까지는 어려울듯하다
  2. 집주론
  3. 화폐는 소아시아 해안,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리디아에서 전해들어왔다고 한다.
  4. 어떤 학자는 동로마 제국도 로마를 계승한 것이므로 로마 제국은 이후 1453년 비잔티움 함락까지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소리 같지만어떤 학자는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라 선언한 것에 따라 1917년 러시아혁명까지를 로마 제국이라고 말하기도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로마 제국은 476년에 끝난 것으로 보고, 그 이후 생존한 동로마 제국은 비잔틴 제국이라 다르게 명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