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렬 (18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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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相烈. 이명은 서상열(徐相說), 자는 경은(敬殷), 호는 경암(敬庵).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56년 2월 10일 충청도 제천현(현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아버지 서진순(徐進淳)과 어머니 진주 강씨 강영환(姜永煥)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장신(將臣) 서문유(徐文裕)의 증손으로, 어렸을 때 부친을 여읜 뒤 지친인 서광범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가 박영효와 친하게 지내자 멀리했다. 그는 무예에 일가견이 있어 일찍이 무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가 통리아문 참의로 임명되자, 그는 서양 오랑캐가 조정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을 통탄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판에 어찌 사대부가 벼슬할 때라고 하겠는가. 도대체 발을 붙일 땅이 어디인가.

이후 김평묵(金平默)과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조정으로부터 선전관을 제수받았지만 사양했고, 다시 세자의 사부로 초빙을 받았으나 역시 거절했다. 갑신정변으로 서광범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시국을 한탄했으며, 갑오개혁이 발표되자 깊은 충격을 받고 병석에 누웠다. 1895년 군수 김익진(金益鎭)이 의복을 개혁시키고 머리를 깎게 하려 하자 이에 따르지 않았고, 그해 여름 주용규(立庵 朱庸奎)와 더불어 유인석을 뵙고 춘추를 강론했다.

1895년 8월 19일 을미사변이 벌어졌다. 서상렬은 이 소식을 접하자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선산에 이별을 고하려 했지만 단발령이 발표되어 길이 막히자 되돌아왔다. 이후 동문인 이춘영(李春永)과 안승우(安承禹)가 11월 28일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서상렬은 이필희(李弼熙), 오인영(吳寅泳), 배시석(裴是碩)과 더불어 단양에서 거병하고 제천으로 달려갔다. 동지들은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그는 굳이 사양하고 이필희를 대장으로 추대한 뒤 자신은 참모가 되었다.

1895년 12월 8일 단양에서 관군과 접전할 때 아군을 매복시켜뒀다가 좌우에서 협공해 상당한 전과를 거뒀으며, 승세를 타서 충주부로 들어가려 했지만 장졸들이 영남 각지의 의진과 합세할 것을 주장하자, 이에 따라 죽령을 넘어서 풍기 고을에 도착해 이곳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영월에 당도해 안승우, 신지수 의병대와 합세했다. 이후 제천에 이르러 관료 권숙(權潚), 서상기(徐相蘷)를 참수하고 병졸을 모집하고 무기를 수리해 갑옷을 만들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유인석이 충주성에 입성한 뒤, 그는 영남 의병을 불러모으자고 건의해 허락을 얻어낸 뒤 원용정(元容正)과 더불어 재를 넘어 각읍 의병을 불러모았다. 이에 여러 인사들이 호응해 예천군에 모여 서상렬을 맹주로 추대했다. 이때 회강(會剛), 회복(會福) 등 7읍이 맹약에 참석했고, 서상렬은 원용정에게 맹약의 글을 짓게 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역적의 당이 되지 말 것.


둘째, 중화의 제도를 변하지 말 것.

셋째, 죽고 사는 것으로써 마음을 바꾸지 말 것.

넷째, 두 마음을 갖고 사사로운 이익을 생각하지 말 것.,

다섯째, 적을 보기만 하고 진격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말 것.

서상렬은 맹약을 체결한 뒤 유인형(柳仁馨) 등 일곱 군수를 베고 상주에 있는 일본군을 공격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예천으로 회군했다. 그 후 관군이 일본군과 더불어 대공세를 가해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는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고 제천으로 후퇴했다가 유인석의 명령에 따라 단양으로 나아가 방비했다. 며칠 후 제천 의병대가 붕괴되고 안승우, 홍사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통곡했으며, 이후 풍기로 이동했다가 영춘을 거쳐 정선으로 나아가 유인석과 합세했다.

유인석은 서북의 황해, 평안도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기로 하고 북상했다. 서상렬은 이에 따라 북상하던 중 여러 차례 적군과 교전했다. 그러던 1896년 6월 12일, 그는 낭천(狼川. 현재 강원도 화천군)에서 적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이때 처음부터 그의 시중을 들어오던 김선이(金仙伊)가 그를 비호하다가 함께 죽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서상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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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