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위치한,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구역[편집 | 원본 편집]
- 1지구: 면직, 모직 등 주로 섬유
- 2지구: 의류, 원단, 커텐, 이불 등
3지구: 1976년 자료에는 3지구로 표시가 되어있으나, 현재는 119센터와 주차장이 위치해있다.- 4지구: 의류, 침구 등
- 5지구:
- 동산상가:
- 건어물 상가: 건어물 일체
- 아진상가(수선골목): 의류 및 부자재 등
교통[편집 | 원본 편집]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서문시장역이 동쪽에 있으며, 남쪽으로 500m 정도 되는 거리에 2호선 신남역이 위치한다. 1호선 중앙로역 까지는 약 1.2km. 도심 가까이에 위치해서 많은 시내버스가 다니고, 경산(990, 991), 칠곡·성주(농어촌버스 250, 250-1), 고령(농어촌버스 606) 등이 서문시장을 경유한다.
화재사고[편집 | 원본 편집]
“ 대화(大火)의 빈발로 이름난 곳 “ — 1975년, 서문시장 화재를 다룬 기사에서[1]
크고 작은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 1951년 10월 21일, 점포 수천동 피해[2]
- 1952년 2월 24일, 촛불이 넘어져 발화 [2]
- 1952년 12월 26일, 인근 건물 420세대 전소 [3]
- 1960년 2월 5일, 30여 점포 피해, 당시 화폐로 536만환 피해[2]
- 1960년 6월 16일, 유류 취급부주의로 발화, 3천여점포 소실[2]
- 1961년 2월 15일, 포목부에서 발화[4]
- 1967년 1월 1일, 합선으로 인한 화재,[5] 보도된 기사에는 1951년에서 1967년 사이에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19건, 그 중에서 대화재가 6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 1968년 11월 3일, 3지구에서 연탄 취급부주의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피해액 2억원 추산 [6]
- 1975년 11월 20일, 4지구 1,2층 및 1지구 2층 전소, 피해액 30억원 추산[7]
- 1976년 12월 17일,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700여동 피해, [8][9]
- 1996년 11월 11일, 전기합선으로 추정되는 화재 [10]
- 2005년 12월 29일, 2지구 화재, 975개 점포중 95% 소실 및 건물 일부 붕괴 [11]
- 2016년 11월 30일, 새벽 2시경에 발생하여 4지구 전체가 전소되고 소방관 2명이 부상입었다. 59시간이 경과한 12월 2일 13시 경에 완전 진화되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국과 맞물려 TK 민심의 캐스팅 보드가 된 상황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현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위로했다.[12] 박근혜 대통령도 서문시장을 방문했으나 15분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보여주기식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3]
각주
- ↑ [1] 매일경제, 1975년 11월 21일자
- ↑ 2.0 2.1 2.2 2.3 [2] 경향신문, 서문시장 화재 일지, 1976년 12월 18일자
- ↑ [3] 동아일보, 1952년 12월 28일자
- ↑ [4] 경향신문, 1961년 2월 16일자
- ↑ [5] 동아일보, 1967년 1월 4일자
- ↑ [6] 매일경제, 1968년 11월 4일자
- ↑ [7] 매일경제, 1975년 11월 21일자
- ↑ [8] 매일경제, 1976년 12월 17일자
- ↑ [9] 경향신문, 1976년 12월 20일자
- ↑ [10] 연합뉴스, 1996년 11월 11일자
- ↑ [11] 매일경제, 2005년 12월 31일자
- ↑ 피해 최소화 위해 정치권·경제계 발빠른 지원 ‘한목소리’, 대구일보, 2016.12.01
- ↑ ‘대통령 눈물’에 더 끓어오른 서문시장 민심, 영남일보, 2016.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