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인

徐度寅. 창씨명은 아오카 지다이라(靑丘字平).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6년 5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남문리(현재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웅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창원청년동맹 웅천지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1930년 8월 박정환(朴正煥)·김민배(金民培) 등과 함께 일제의 강제병합일인 8월 29일을 기하여 망국민(亡國民)임을 자각시키고 조선독립의 기운을 촉진할 목적으로 ‘불온’ 격문을 제작해 배포하기로 하였다. 같은 달 28일 오전 10시경 창원군 웅천면 남문리의 박상록(朴尙綠) 집에 모여, “오늘은 8월 29일 망국기념일, 아아, 불행한 사회 약소민족이여, 각성하라”라고 쓰고 적기(赤旗)를 그린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박정환이 소유한 석판(石版)과 복사지로 ‘금일은 8월 29일 망국기념일, 생각하라, 일본제국주의 파멸, 조선혁명 성공 만세, 우리의 무기는 단결’ 등을 기재한 ‘불온’ 삐라 약 100매를 복사하였다.

8월 29일 당일 오후 3시경, 그는 동지들과 함께 문서를 대중의 눈에 잘 띄는 남문리 김봉순의 집 등 7개소에 부착하였고, 다수가 왕래하는 여러 요로에 삐라를 배포했다.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0년 10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공소했지만 1930년 10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를 취하하여 옥고를 치렀다.[1] 이후 개성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1년 9월 19일 가출옥 되었다. 1938년 8월 7일 동아일보사 진해지국의 웅천주재 기자로 활동했다.[2]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서도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공훈록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