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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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燻.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1년 3월 18일 경기도 개성군 중면 대룡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경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조선독립신문>, <경고>라는 제목의 문서 60여 매를 가지고 고인 중면 대룡리로 귀향했다. 이후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이희두(李熙斗)·이필만(李弼萬) 등과 함께 인근의 무명산(無名山) 위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2일 밤 무명산 위에 모인 주민들과 대룡리 내의 주민들에게 자신이 귀향할 때 가지고 온 문서를 배포·회람시키며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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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1919년 5월 6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1919년 6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유지되었다.[2]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옥고를 치렀다.[3] 1920년 4월 28일 은사로 특별 출옥한 뒤 은거하였고, 8.15 광복 후인 1952년 경상남도 통영군 산달국민학교(山達國民學校) 교장을 역임했다.[4]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85년 7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상훈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10일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공훈록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