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기줄다리기

삼척 기줄다리기
문화재 정보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호
지정일 1976년 6월 15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정월대보름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에서 행해지는 민속놀이로 강원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 행사이다. 기원은 조선시대 현종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삼척시의 정월 축제인 죽서문화제에서 기줄다리기 대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줄다리기 이름의 어원은 큰 줄에서 나온 네 갈래의 줄이 두 방향으로 뻗어가는 것이 게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하여서 게줄다리기라고 한 것이 기줄다리기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특성[편집 | 원본 편집]

본래 한국의 정월대보름 풍습으로 줄다리기 형태의 마을 축제 같은 것이 여러 곳에 퍼져 있는데 이 삼척 기줄다리기 역시 정월 대동제 형식으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성격이 강하다. 여타 지역별 줄다리기처럼 줄을 암줄과 수줄로 나누고 당기는 자리를 정한 다음에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동일하나 삼척 기줄다리기의 경우 삼척만의 특별한 지역 특색이 있다. 우선 일반적인 민속 줄다리기는 보통 새끼줄만을 사용하지만 삼척 기줄다리기는 줄이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칡넝쿨을 몸체에 감아두는 특성이 있으며, 일반적인 줄다리기는 농경사회의 마을단위 행사인지라 행사 장소가 보통 논이나 논두렁 같은데서 이루어지는데 삼척기줄다리기를 전통적으로 해 오던 행사장은 당시 삼척의 오십천 부근의 사대광장이었다.[1]. 거기에 해안가와 산간지방이 공존하는 강원도 영동지방의 특성상 팀이 해안지역인 부내와 산간지역인 말곡으로 팀을 먹고 하는 행사라는 특성이 있었다. 물론 다른 지역의 줄다리기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이기는 쪽이 잘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동일하다.[2]

여기까지만 보면 어디가 이기건 상관없는 주술적 의미와 마을 대동제로 끝나겠지만 진짜 이 줄다리기의 무서운(?) 특성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이 줄다리기의 승부로 삼척 관내의 부역을 지는 쪽에다가 몰빵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1년치 열정페이 생노가다 결정전이었던 것. 부역의 주 내용은 삼척읍성의 수리, 정라진 인근의 수군 진지 및 방책 수리[3], 저수지 축조 및 수리 등의 중노동이 주를 이루었다. 이런 노가다 몰빵내기가 걸린데다 인원제한도 특별히 없어서 삼척 읍성 인근의 주민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의 북평, 미로, 근덕 방면에서 온 사람들까지 각 편에다가 영입(?)하여 그 규모를 크게 하였고, 참가하는데 있어서는 남녀의 제한도 없고 어떻게든 줄을 당겨서 무조건 이기는게 목적인 후덜덜한 무제한전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줄의 무게를 늘려서 끌려가지 않게 하기 위한 꼼수로 부녀자들이 각자 자기 치마에다 돌을 담아서 무게를 늘려 줄다리기에 나서기도 했다고 하며, 끌려가지 않기 위해 모래를 발로 파는 것도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이유로 승부를 내는 것 자체가 미친듯이 어려워서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으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개중에는 한 손으로는 줄은 잡고 다른 손으로는 술을 먹으면서 당기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진행[편집 | 원본 편집]

우선 정월이 시작되면 동리의 아이들이 먼저 모여서 줄을 만들어서 하는 기줄다리기를 하는데 이를 속닥기줄다리기라고 한다. 이후 보름 일주일 전쯤에 좀 더 큰 청소년들이 하는 중기줄다리기를 하고, 마지막 보름날에 부내-말곡의 두 팀으로 크게 나뉘어서 큰기줄다리기로 진행이 된다. 참고로 부내쪽이 동쪽과 여성을 상징하며, 삼척부사의 부인이 응원하였으며, 말곡은 서쪽과 남성을 상징하며, 삼척부사가 응원을 하였다.

본행사격인 큰기줄다리기를 하기 전에는 각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며, 각자 동네에서 만들어 둔 줄을 가지고 자기네 편이 있는 기 아래로 모여서 다시 줄을 연결, 줄다리기를 하는 방식이었으나 현대에는 시간관계상[4] 중간의 과정이 꽤 많이 생략되었다.

현대[편집 | 원본 편집]

현대에 들어서 과거 있었던 제의적 의미나 부역 몰빵내기 같은 단두대 매치 비슷한 상황은 사라졌으나 죽서문화제 행사의 활성화를 원하는 삼척시에서 아예 전국단위로 참가팀을 받는 줄다리기 대회로 만들어버렸다. 1998년 죽서문화제 당시 처음으로 이 기줄다리기 행사를 시내에서 크게 가졌으며 이후 2007년부터는 행사 장소를 진주로에서 문화예술회관 앞 엑스포 광장으로 옮기고 일반 참가팀 신청을 받아서 우승 상금 1천만원을 걸고 토너먼트 대회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각주

  1. 봉황산 자락 끝자락부터 현재의 진주로까지 이어지는 꽤 넓은 하안평지였던 곳으로 조선시대 영동지방의 사형수의 사형집행장소이기도 하며, 남산 절단공사를 하기 전에는 자갈밭과 모래밭이 혼재되어있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 참고로 사형 집행장소는 현재의 삼척종합버스터미널 인근에 해당한다
  2. 부내가 이기면 풍어, 말곡이 이기면 풍년
  3. 현 육향산 인근
  4. 각 줄을 다시 연결하여 기줄을 만드는데 5시간은 훌쩍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