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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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정보 | |
주소 |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47 |
대지면적 | 200 m2 |
문화재 정보 | |
종목 | 사적 제101호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서울 삼전도비(三田渡碑)는 병자호란에서 청에게 패배한 뒤 삼전도의 굴욕에서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조선 인조 17년(1639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이고,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되어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이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사건사고[편집 | 원본 편집]
- 2007년 2월 3일 삼전도비의 앞면에는 "철 370", 뒷면에는 "거 병자"라는 붉은색 페인트 글씨를 써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1] 원래는 해머로 부숴버리려고 했지만 비석이 워낙 단단해서 페인트 칠을 한 것이라고. 물론 삼전도비는 치욕적인 상징물이 맞지만 이 비석을 부순다고 하여서 그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부끄럽고 굴욕적인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앞으로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러한 행동은 역사를 잊어버리겠다는 잘못된 행동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