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사진(寫眞, Photography)은 대상의 표면에서 반사된 빛을 감광면에 감광시켜 얻어낸 상을 말한다. 이러한 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촬영이라 하는데, 사진 촬영은 보통 카메라를 이용해 이뤄진다. 카메라는 렌즈와 같은 광학 장치를 이용해 사진 필름, 또는 감광 센서에 상을 맺히게 한다. 필름과 같은, 화학적 감광제를 사용하는 감광면에 얻어낸 상을 고정하는 작업을 현상, 현상한 이미지(특히 네거티브 이미지)를 특정한 용지 따위에 포지티브 이미지로 출력하는 것을 인화라고 한다.[1]

1 역사[편집]

사진의 역사는 촬상면 기술의 발전 역사와 거의 동일하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구조의 원시적 카메라는 기원전부터 존재하였으나, 실제 사진에 해당하는 상을 고정시키는 기술은 은 화합물과 같은 감광제를 다루는 법이 알려진 이후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1.1 카메라 옵스큐라[편집]

빛을 다루는 광학 기술과 감광 유제를 만들기 위한 화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먼 과거에도 핀 홀을 통과한 광선이 상을 맺게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카메라의 선조격인, 바늘구멍 사진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어두운 방'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기원전 4세기 묵자의 기록과 10세기 아라비아의 학자 이븐 알하이삼(또는 라틴어로 알히젠Alhazen)의 기록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미술사적으로, 카메라 옵스큐라는 르네상스 시기의 원근법과 회화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어두운 방'이 만들어내는 상은 매우 사실적이었지만 이 상을 고정할 방법은 17세기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17세기 초 은 화합물이 빛에 닿으면 검게 변하는 사실이 발견되었지만 은 화합물이 완전히 검게 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아내진 못했다.

1.2 헬리오그래프[편집]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
그라의 집 창 밖 풍경, 1826

19세기, 프랑스의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얻는 상을 석판 인쇄에 활용하기 위해 빛에 노출되면 경화되는 유대 비투맨을 감광제로 사용한 실험을 하였다. 1826년, 8시간의 노출 끝에 인류 최초의 사진이 탄생하였다. 니엡스는 이를 그리스어로 태양을 의미하는 Helios와 그림을 의미하는 Graphos를 더해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명명하였다.

1.3 다게레오타이프[편집]

프랑스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 역시 카메라 옵스큐라의 상을 고정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니엡스의 연구결과를 전해들은 다게르는 니앱스와 연구결과를 교환하였고 니엡스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상을 고정시키는 기술을 완성하여 1839년 1월 7일 발표한다. 다게르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다게레오타이프'라고 명명한 이 사진술은 동판 표면의 요오드화은이 감광되면 아말감이 형성되는 원리를 이용하였는데, 헬리오그래프와 비교했을 때 획기적으로 짧아진 노출 시간과 훌륭한 묘사력에도 불구하고 동판 위에 고정되는 이미지의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이후 등장하는 네거티브-포지티브 방식으로 대체된다.

1.4 칼로타이프[편집]

다게르의 사진술이 공개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윌리엄 헨리 탈보트(William Henry Talbot) 또한 종이를 지지체로 사용하는 새로운 사진술을 발표한다. 아름답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Kalos와 인상이라는 의미의 Typos를 더해 칼로타이프(Calotype)라고 명명된 이 방식은 다게레오타이프와 비교하였을 때 선명도는 낮았지만, 복제성이라는 아주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칼로타이프 방식으로 촬영한 뒤 감광된 용지를 현상하면 밝기가 반전된 네거티브 이미지(음화, 陰畵)를 얻을 수 있다. 이 네거티브 이미지를 다른 감광용지에 겹쳐 감광시키면 다시 원래 밝기와 같은 포지티브 이미지(양화, 陽畵)를 얻게 되는데, 이러한 네거티브-포지티브 방식으로 이미지를 무한히 복제할 수 있었다.

1.5 콜로디온 습판 방식[편집]

로저 펜튼(Roger Fenton)
사진 마차, 1855
크림전쟁에 종군기자로 참가한 로저 펜튼의 사진 마차, 당시 사진가가 사진을 찍기 위해 들고다녀야 하는 장비는 약 50kg에 이르렀다.

이전에 사용하던 지지체인 종이나 황동 판과 비교하였을 때, 유리는 균일한 표면과 내화학성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감광제를 유리에 고정시킬 방법이 없어 유리를 지지체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1851년 영국의 프레데릭 스코트 아처(Frederic Scott Archer)의 연구로 콜로디온이 지지체로서 훌륭하다는 것이 발견된 이후부터 현대적 젤라틴 건판이 등장할 때까지 콜로디온 습판 방식은 사진가들에게 널리 애용되었다. 콜로디온은 젖어 있을 때에는 끈끈한 상태로 존재하지만 빠르게 건조되어 투명한 막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촬영과 현상은 유리가 젖어 있는 상황에서 완료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사진가는 쵤영을 위해 카메라와 유리 판에 더해 감광용액과 현상용액과 같은 각종 화학 약품, 현상을 위한 암실을 통채로 들고 다녀야 하였고, 유제가 마르기 전에 쵤영을 마친 다음 즉시 암실에서 현상 과정을 하여야 했다.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임에도 복제가 편하고,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이미지 양쪽에 모두 대응 가능하며, 노출시간이 수 초까지 줄어든 장점을 가지는 콜로디온 습판 방식은 사진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1.6 현대적 필름의 등장[편집]

코닥 카메라
1888년 출시된 코닥 카메라는 '당신은 셔터만 누르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세요(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광고로 사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록 콜로디온 습판 방식이 대중에게 사진을 접할 기회를 늘려준 것은 사실이지만, 콜로디온 습판 방식은 여전히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필요한 장비도 많으며 어렵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1880년대까지, 촬영은 소수의 전문가와 덕후열정적인 아마추어에게 한정되어 있는 행동이었다. 80년대 중반, 콜로디온을 대체할 새로운 지지체의 개발과 롤 필름의 등장으로 사진술은 또 한번 혁신을 일으킨다. 젤라틴을 기반으로 한 젤라틴 유제는 콜로디온과 달리 건조된 상태에서도 높은 감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사진사는 콜로디온 습판 방식에서와 같이 지지체가 마르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촬영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등장한 롤 필름은 유리 건판에 비해 매우 줄어든 무게와 부피로 사진사들의 짐을 가볍게 하였다. 롤 필름 최초의 상업적 대량생산은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에 의해 이루어졌다. 1885년, 롤 종이에 얇은 젤라틴 유제가 발려 있는 이스트만 아메리카 필름을 발표한 이스트만은 1888년 현대식 카메라와 유사한 코닥 카메라를 발표하였다.[2] 이후 1889년, 한니발 굿윈(Hannibal Goodwin)이 기존의 종이 롤 필름보다 견고하고 유연한 플라스틱 재질의 롤 필름을 발명함으로서 현대적 필름이 등장하게 된다.

1.7 디지털 시대[편집]

21세기 이후 사용되는 카메라는 거의 디지털 방식이다. 필름의 감광부를 디지털 센서, 정확히는 빛을 받아들여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반도체로 대체한 카메라이다. 장점은 역시 데이터로 저장하는 방식이라 간편하게 사진을 만들어내고, 카메라를 들고 나서 촬영 이후 드는 필름의 현상과 인화 등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많이 촬영해도 비용 발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정도이다.

필름 카메라의 시대를 코닥(KODAK)이 열었다면, 디지털 카메라의 시초 역시 코닥이 열었다. 코닥은 1975년에 이미 ccd 방식의 이미지 센서를 개발하고 있었고, 디지털 이미지 센서의 기본 방식인 베이어 방식 역시 확립하여 특허를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코닥은 자신들의 주력 사업인 필름카메라 사업을 끝까지 끌고 가려고 했고, 중국에서의 사업 실수로(라기에 보다는 병크에 가까운...) 인한 손해와 몇 번의 중대한 실수로 타격을 입고 파산신청 후 공중분해되어 버렸다.

앞선 기술을 먼저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안주하려는 기업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캐논과 니콘의 경쟁은 필름 카메라 이후 디지털로 넘어와서도 계속되었다. 캐논은 타사가 집착했던 35mm필름 규격의 센서크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APS-C라는 사장되었던 필름규격(1.5배 크롭)을 다시 꺼내들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다지털 카메라를 공급하는 데 성공, 이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니콘을 넘어서고 디지털 SLR, DSLR카메라 대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와중에 몇 가지 전략이 있었지만, 다른 항목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이후 새로운 카메라 형식인 미러리스(Mirror-less)카메라의 등장과,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전으로 기존 DSLR 및 컴팩트 카메라의 판매는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스마트폰 카메라와 DSLR 및 미러리스 카메라의 틈새를 노린 작고 가벼우며 고사양인 하이엔드 컴팩트 카메라가 나타나기도 했으며, GoPro(고프로)를 시작으로 야외 활동시 활동하는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액션 캠 시장이 만들어졌다. 360도 전체를 담을 수 있는 360도 카메라 역시 액션 캠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다.

2 사진의 여러 요소[편집]

2.1 노출[편집]

노출은 렌즈의 조리개와 셔터의 셔터 속도, 촬상면의 감도의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정해지며, 촬상면이 받아들인 빛의 양을 뜻한다. 촬상면에 빛이 감광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는[3] 촬영하다라는 말 대신 노출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노출은 사진의 밝기와 디테일의 품질과 직결되므로 정확하고 의도된 노출은 사진의 핵심이며, 적절한 노출을 위해 사진사는 흔히 노출계를 사용한다. 노출계는 이러한 노출의 양을 수치적으로 정량화 하여 EV값으로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현대에 발표된 대부분의 카메라는 노출계를 내장하고 있으며, 노출계가 없거나 특정한 노출 방법을 필요로 하는 사진사들은 외장 노출계를 사용할 수 있다. 노출계가 없는 경우에(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나간 경우 등), 사진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조리개 값과 셔터 속도를 정하는데, 이럴 때 사용되는 방법중 유명한 것은 써니 16 법칙(Sunny 16 rule)이 있다.

2.1.1 노출의 3요소[편집]

노출을 결정하는 요소로는 조리개, 셔터 속도, 감도가 있다.

조리개는 보통 카메라의 렌즈에 위치하여 촬상면에 도달하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조리개의 개방 크기를 숫자로 나타낸 것을 조리개 값(혹은 F-stop)이라고 하는데, (렌즈의 초점 거리)/(조리개 개방 영역의 지름)로 나타내며 조리개값이 작을수록 촬상면에 도달하는 빛의 양이 많아져 노출의 양이 커진다.

사실 조리개는 엄밀히 말해서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각 렌즈마다 측정해 놓은 투과율(T)이 있는데, 이것이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빛의 양을 결정하는 요소이지만, 이것은 렌즈의 설계와 코팅 등으로 F값에 무조건적인 비율로 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반 사용시에는 F값이 편하게 쓰인다. 다만 영화 등 영상 촬영에는 이 T값이 매우 중요하고, 일부 특수 렌즈의 경우 F값에 비해 T값이 낮은 경우가 있어 따로 표기하기도 한다. 영상용 렌즈에는 일반적으로 T값이 표기된다.

F값은 1.4, 1.8 등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완전히 빛이 들어가는 값을 1로 설정하고, 넓이가 절반이 되는 값인 2를 제곱근한 값, 즉 조리개의 지름값의 비율이다. 1.4는 2의 제곱근에서 두 자리 이하를 버린 값, 2는 4의 제곱근이다. 고로 1.4에서 2로 조리개 값이 변한다면 빛의 양은 정확히 절반이 되는 것이다.

셔터는 촬상면의 앞에 위치하며, 정확한 시간만큼만 열려 촬상면에 빛이 감광되는 시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을 셔터 속도라고 하며 셔터 시간이 길수록 노출이 오래 진행되어 노출의 양이 커진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밝은 환경이라면 상대적으로 빛이 많아 짧은 시간동안 노출을 주어 적정량의 밝기를 만들어내고, 어두운 야경 촬영의 경우에는 오래 노출시켜 빛을 충분히 확보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스포츠 촬영의 경우에는 움직임을 정확히 잡아내기 위해 그리 어둡지 않아도 밑에 서술하는 감도를 올려 충분한 속도를 확보하는 등이다.

감도는 빛을 받아들이는 촬상면의 빛에 대한 민감도, 반응 정도를 나타내며, 필름 속도라고도 한다. 감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과거에는 ASA(미국 표준 협회) 선형 스케일 표기와 DIN(독일 공업 표준 규격) 로그 스케일을 사용하였으며, 현대에는 두 방법을 함께 표기하는[4] ISO 표기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감도는 상대적이다. 감도값이 낮으면 낮을수록 이미지가 선명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지지만, 그만큼 광량을 요구한다. 100의 감도는 200의 감도보다 두 배의 광량을 요구한다. 이 값은 절대적인 비율로 올라간다. 감도를 높이면 필요한 광량도 줄어들지만, 적은 양으로 일정량의 이미지를 만들다보니 상이 거칠고, 색도 온전하게 표현되지 못한다. 오늘날은 기술의 발달과 특화된 기술 등으로, 매우 높은 값의 고감도에서도 일정 이상의 상을 깔끔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포기한 영역도 있다. 이는 다른 문항에서 서술한다.

2.2 초점[편집]

2.2.1 심도[편집]

2.3 현상과 인화[편집]

3 트리비아[편집]

  •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 사진이 발명됐을 당시만 해도 촬영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웃으면서 찍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에도 웃으면서 찍는 사진은 많이 있었다.
  • 그리고 그 때에는 이상한 풍습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죽은 시체에 옷을 입혀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 찍는 것이었다.
  • 장난삼아 민망한 순간에 사진을 찍어서 조롱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니 하지말자. 심하면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자신은 그냥 추억거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는 평생 괴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4 관련 항목[편집]

5 각주

  1. 필름 인화의 경우 인화지도 감광지이기 때문에 현상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2. http://www.kodak.com/ek/US/en/Our_Company/History_of_Kodak/Milestones_-_chronology/1878-1929.htm
  3. 특히 특정한 조리개와 셔터 속도로 촬영했다는 것을 알릴 때
  4. 디지털 카메라에서 DIN 표기 부분은 흔히 생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