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라이히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년 3월 24일~1957년 11월 3일)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후 등장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이다. 그는 프로이트 사상과 마르크스 사상을 결합한 성(性)-정치 이론을 이용해 성-정치(Sex-Pol) 운동을 전개했으나 어느 진영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 미국의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대표적인 저서는 《파시즘의 대중심리》, 《오르가즘의 기능》, 《성해방》 등이 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가루시아 지방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어머니의 자살과 5년 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1916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복무하고 1918년 빈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중단하고 의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프로이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에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지만 외면당했다. 게다가 1928년부터 1933년까지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일환으로 성-정치 운동을 전개하다가 공산당으로부터 퇴출당했다.

이후 외국으로 전전하면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39년 미국에 최종적으로 정착하여 ‘오르곤 에너지’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해 실험에 집중했지만 다른 과학자들의 비난을 받아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1957년 11월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1]

사상[편집 | 원본 편집]

빌헬름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리비도 개념을 뒤집혔다.

라이히는 성욕 조절과 도덕 조절은 같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고 성욕에 대한 금욕주의는 죄책감과 불안감을 들게 하여 더욱 성에 대해 신비주의적인 호기심을 자극해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하여 파탄이 일어났다고 하여 성욕에 대한 완전한 금욕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부장제는 권의주의적이고 결혼 제도는 사회적, 경제적 관계에서 나왔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이유로 구속하는 것은 억압을 야기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가부장제, 결혼 제도와 가족 제도를 비판 했다. 권위주의는 복종을 강요하여 파시즘 사회로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성 쾌락에 대해 나쁘게 보지 않았고 성행위는 서로 동반과 견해에 따라 도덕 여부가 결정된다고 보았다.

영향[편집 | 원본 편집]

68혁명이 일어나고 성해방담론이 대두되면서 그의 사상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저서[편집 | 원본 편집]

  • 《파시즘의 대중심리》
  • 《오르가즘의 기능》
  • 《성해방》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 시기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촉발한 것도 한 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