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에 살이 올라있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는 것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먹어가는데 큰 일을 이루지 못한 상황을 답답해한다는 의미다.
유래[편집 | 원본 편집]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에 모두 등장하는 고사로,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한 유비가 여러 해 동안 이렇다할 전투도 치르지 못한 체 하릴없이 나이만 먹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면서 내뱉은 말에서 유래했다.
“ 九州春秋曰 : 備住荊州數年, 嘗於表坐起至廁, 見髀裏肉生, 慨然流涕. 還坐, 表怪問備, 備曰 : 「吾常身不離鞍, 髀肉皆消. 今不復騎, 髀裏肉生. 日月若馳, 老將至矣, 而功業不建, 是以悲耳.」 “ — 삼국지 촉서 선주전
진수가 편찬한 《정사 삼국지》촉서 선주(先主, 유비)전에 주석으로 달린 구주춘추에서 언급되는 일화이다.
유비는 형주에서 여러 해 머물렀다. 어느 날 형주자사 유표와 자리를 함께 하였는데, 잠시 측간에 갔다가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군살이 붙은 것을 보고 자신의 처지에 노하여 눈물을 흘렸다. 자리로 돌아온 뒤 유표가 괴이하게 여겨 유비에게 이유를 물었다. 유비가 답하길 “제 몸이 항상 말 안장을 떠나지 않으니 넓적다리에 살이 찔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말을 타지 않으니 넓적다리에 군살이 올랐습니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흘러 장차 노인이 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공업(功業)을 아직 세우지 못했으니 이 때문에 슬퍼했습니다.”
삼국 시대 당시에는 아직 등자가 발명되기 이전이었고, 말을 타는 경우 온전히 자신의 허벅지 힘만으로 낙마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했으므로 크고 작은 전투가 잦았던 유비의 입장에서는 형주에서 조조와 싸우지도 않고 그저 시간만 축내면서 나이만 먹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것이다. 또한 당시 의학 수준과 잦은 전쟁으로 남성의 수명이 상당히 짧았고, 50세 정도면 노인 취급을 당했고 환갑을 넘기면 장수했다는 소리를 듣던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형주에 의지할 당시 유비의 나이가 이미 40대 중후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충분히 탄식이 나올 수 있던 상황이었다.
각주
삼국지 관련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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