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영국(좌측)과 유럽 연합(우측)의 깃발

브렉시트(Brexit, Britain Exit)는 영국유럽 연합(EU) 탈퇴를 이르는 말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1975년 이전[편집 | 원본 편집]

1957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가 창설되었지만 영국은 회원국으로 서약하지 않았다. 이후 영국은 1960년대에 두 번에 걸쳐 EEC에 가입 신청을 하였지만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 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실패했다. 영국은 1973년에야 EEC의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보수당 주도로 이루어졌던 EU 가입에 불만을 가진 노동당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EEC 탈퇴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국민 투표가 추진되게 된다.

1975년 1차 국민투표[편집 | 원본 편집]

1975년 6월 5일, 영국의 모든 유권자는 EEC 잔류 여부를 묻는 다음 질문에 대하여 투표했다.

"당신은 영국이 유럽 공동체 (공동 시장)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Do you think the UK should stay in the European Community (Common Market)?

투표 결과 잔류측이 다수를 차지했고(잔류 67.2%) 영국은 EEC 회원국으로 남으며 한 번의 고비를 넘게 되었다.

1975년 이후[편집 | 원본 편집]

1983년에 영국 노동당은 다시 EEC 탈퇴를 추진하였지만 총선에서 크게 패배하며 당론을 EEC 잔류로 바꾼다.

1993년에는 EEC가 유럽 연합(EU)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렇게 계속 잠잠하나 싶었지만...

2000년대 이후[편집 | 원본 편집]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EU 경제권의 조정 능력 부재가 화두로 떠오르고, 2010년대 중반 이후로 IS가 위세를 떨쳐 중동 지역의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바람에 안정적인 유럽으로 난민이 몰리면서 저소득층 ~ 중산층의 경제 불안이 심화되어 EU를 탈퇴하자는 여론이 힘을 받게 되었다. 데이비드 케머런 총리는 이를 국민투표에 부쳤고, 2016년 6월 24일 투표가 실시되었다.

2016년 국민 투표[편집 | 원본 편집]

개표는 영국시간으로 2016년 6월 23일 자정부터 시작해 공식 결과는 이르면 6월 24일 아침에 나올 것이라고 보았다. 지브롤터는 시간대 상 영국에서 가장 먼저 투표를 시작해서 마치는 지역이기 때문에 개표 결과도 가장 먼저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유럽연합 잔류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왔다.[1] 그러나 곧 잉글랜드 지역에서 개표가 시작되며 유럽연합 탈퇴 쪽으로 개표결과가 기울기 시작했다. 반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런던은 큰 표차로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개표가 진행됨에 따라 BBC는 유럽연합 탈퇴 측이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것 같다고 잠정발표하였다.[2]

6월 24일 아침 영국의 국민투표 공식 개표 결과, 유럽연합 탈퇴 찬성에 52%, 유럽연합 잔류 찬성에는 48%로 확정되었다.[3][4] 지역별로 보자면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런던이 잔류에 찬성했고, 런던을 제외한 잉글랜드 지역이 탈퇴에 찬성했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국민투표
잔류 지지 16,141,241 잔류 지지율 48.11%
탈퇴 지지 17,410,742 탈퇴 지지율 51.89%
무효 25,359 무효율 0.08%
투표자 수 33,577,342 투표율 72.2%
유권자 수 46,501,241
출처[5]
개표결과
탈퇴:
17,410,742 (51.9%)
잔류:
16,141,241 (48.1%)

[6]

여파 및 반응[편집 | 원본 편집]

세계 경제는 혼돈과 카오스 상태. 아베노믹스는 물거품이 되고 엔화가 급등하였다. 어느 정도냐면 4년동안 아베노믹스를 떨궈놓은 엔화 가치가 4시간만에 원상복귀되고 다시 그 이상으로 올라갔을 정도.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영남권 신공항 쇼크에 이어서 2연타를 맞았다. 괜찮아 일본이 더 심하잖아

사실 영국은 EU는 막대한 책임을 요구한다고 생각해 불만이 많아져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 유로 최초로 AIIB를 가입하여 이를 해결하려고 했고 불과 몇개월 전 중국으로부터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월가에 의해 탈탈 털리고 있는 중국이 자국하나 챙기는 것 마저 위험해 보이는걸 뒤늦게 깨달은 캐머런은 당선되기 전만해도 외치던 브렉시트를 돌연 철회하고 브리메인을 부탁했지만 결국...여기에 중국 역시 막상 EU를 목적으로 영국에 접근한거라 영국을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대상처로 느끼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

유럽 여기저기서 유럽연합 탈퇴 및 분리독립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서 유럽연합 사상 최대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프랑스는 마치 200여년 전 대륙봉쇄령이라도 할 기세인지 EU를 탈퇴하려는 나라에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고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영국을 제외한) 남은 회원국 27곳은 브렉시트를 승리로 끝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국에 대한 EU의 정치적·경제적 보복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경 대응으로 다른 회원국의 연쇄 탈퇴를 막고 결속력을 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프랑스가 영국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영국만 손해보는 것도 아니고 프랑스도 손해볼 내용인데다가 유럽연합에 긍정적이지 않은 프랑스 국민들이 6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국민들이 참아 줄것인가도 문제다. 거대 규모 경제끼리의 교역 트러블은 상당한 자국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투표결과에 책임을 지고 케머런 영국 총리가 사임할 의사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캐삭빵

투표 다음날 영국 독립당(UKIP)의 당수 나이절 패라지는 영국 방송국 ITV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EU분담금 지출을 아껴서 NHS재정에 보탤 수 있다고 확신하느냐고 질문하자마자 "아뇨 확신은 못합니다. 그건 우리 실수입니다"라고 즉답, 덕분에 인터뷰어가 "지금 천 칠백만명이 그 말을 믿고 탈퇴 투표를 한 다음에...그러니까 그 말만 가지고 몇 명이나 찍었다고 말은 못하지만 그게 선거운동의 핵심이었는데...이제 와서 그게 실수였다고 말하신 겁니까? 하지만 어쨌든 약속한 대로 쓰인다는 보장은 못하신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이 아침에 일어난 사람들이 어제 한 선택의 결과로 이런 꼴이 났다는 걸 알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거시죠?"라는 질문을 했고. 이에 "우리는 연간 백억 파운드, 그러니까 매일 3천 4백만 파운드가 생기는 건데, 이제 이게 공돈이 된 거니까, 이 돈을 NHS나, 학교나, 뭐 어디든 쓰면 되죠. 제가 공식 탈퇴 선거운동본부에서 배제되어있었다는 걸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 할 말을 하며 다녔던 거고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알게 되실 게 뭐냐면 우리가 정상국가로 복귀했고, 우리 법률을 직접 다룰 책임을 되찾았고, 우리 스스로 바깥 세계와 관계할 능력을 회복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라고 응답하였다.

스코틀랜드는 이번 투표에서 브렉시트 반대가 많았기에 격분하여 2년전 무산된 독립투표안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내세우는 뒷배가 바로 북해유전인데 당장 석유시세가 불안정하다 못해 똥값이 된 전적이 있는데 이것만 믿고 갈 수 있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막말로 잉글랜드는 그동안 쌓아놓은 금융자산 까먹으며 버틸수나 있지 스코틀랜드는? EU만 믿고 분리독립 이전에 자립할 수 있는지나 걱정해야할듯. 분리독립했는데 잉글랜드에 의지한다면 말이 독립이지 이전이랑 다를바가 없고 무턱대고 독립했는데 뭣도 없다면 그냥 노숙자나 진배없는 신세나 마찬가지다. 독립을 외치는 정치계의 입장과 달리 경제계의 입장이 독립에 시큰둥한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록 밴드 오아시스의 전 멤버 노엘 갤러거의 의견이 화제가 되었다. 어찌보면 이 사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촌평일 것이다.

"우리가 탈퇴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요? 난 우리한테 투표권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매일 밤 정치인들이 TV에 나와서 이 x나게 중요한 결정이 영국에 x나게 큰 변화를 줄 거라고 어쩌고 저쩌고 떠드는데, 우린 x같은 나랏일을 너네들이 처리하라고 당신들한테 돈을 주는 거라고, 왜 그걸 국민들에게 묻는거죠? 국민 99%는 돼지 똥만도 못한데? 이라크 전쟁 때 군인들 보낼때 그 놈들이 우리한테 물어보고 했냐? 안 물어봤잖아, XXX들. 난 그거(브렉시트) 씨리얼 이름처럼 들려서 좋던데, 브렉시트 한 사발."
— 노엘 갤러거, [http://stopcryingyourheartoutnews.blogspot.com/2016/06/noel-gallagher-on-brexit-referendum.html

왜 영국인들은 스스로 브렉시트를 선택했는가?[편집 | 원본 편집]

이 사건에서 영국민의 반 이민, 반외국인 정서는 영국 로더럼 아동 성매매 사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구 삼십만인 로더럼 시에서 십수년에 걸쳐 백인 소녀들 최소 천여명이 성추행, 성폭행, 성매매를 당했는데 시 당국에서 인종문제로 시끄러워질까봐 계속 쉬쉬하던 와중에 2014년도에서야 공론화된 사건으로 당시 시에 거주하던 파키스탄 커뮤니티 8000여명이 대부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어 논란이 된 사건이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조 콕스 의원이 암살되었을때 잔류측으로 기울것 같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으나 결국 이런 동정론으로 정치, 경제적인 측면이 달린 이 문제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한 것 같다.

거기다 난민들이 그렇다고 현지에 순순히 적응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국에서 생활하던 행동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이미 난민들로 인해 수많은 갈등과 소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사태를 단순히 비합리적인 이유라고 보기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선 시리아 난민문제가 유럽이란 운명 공동체를 개판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굴러들어온 돌들이 복지금 타먹고, 그럴싸한 봉급받는데 비례해 일자리 빼앗긴다는 의식이 만연한 가운데 발칸으로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매 국경마다 난민들이 거대한 수용소를 형성했고,유로 터널 앞에선 영국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주거지와 식량을 요구한 폭동이 거의 일상화되고 있다, 지중해 연안의 치안은 북아프리카로부터 유입된 인구 랠리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다, 여기에 유로사태 이후 금융위기 이래 만성화된 불황까지 겹쳤으니 민심 이반과 국론 분열에 편승한 이런 심리가 활개를 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다. 급기야 난민 유입과 구제금융 부담에 지친 영국의 저소득층, 서민층도 해묵은 고립 감정이 부활해 브렉시트를 선택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브렉시트를 주장하던 사람들의 가장 큰 동기는 이런 상황에 대한 반감이다. 그 반감이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걱정이건, 이민자들이 누리는 복지건, 몇몇 이민자들의 행패건 간에, 어쨌거나 외부인에 대한 반감이 브렉시트의 주 원인이었다. 즉, 표면적인 문제를 보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문제지만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앙겔라 메르켈 체제 독일의 독단적인 이민, 난민 정책에도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괜히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유럽연합 탈퇴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닌만큼 독일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볼 순 없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브렉시트 찬성측은 그저 권력이 눈이 어두워 브렉시트가 무슨 유토피아라도 되는 마냥 이런 심리를 조장하는 발언들로 선동했고 반대파 역시 뜬금없는 홍보만 남발하였다. 정작 영국 정치권에선 브렉시트를 자기들 유리한 대로만 홍보했지 브렉시트로 영국인들이 어떤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는 전혀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영국 정치계가 브렉시트를 두고 벌인 짓들 이렇게 되니 브렉시트를 탈퇴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재투표를 원하는 시민들의 서명이 100여만명을 넘어선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듯하다. 유럽연합은 오히려 영국을 빨리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게 비단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은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전 유럽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유럽연합 전반의 붕괴를 불러 일으킨다면 영국의 이런 결정은 오히려 난파되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사례로, 독일의 시리아 난민 수용 정책은 유럽연합을 붕괴시킨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기록될지도 모른다. 물론 영국이 그전에 사분오열 되어 이것이 후세에 영국 분열이라는 이름으로 남을거라는 예상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럽연합은 영국을 강하기 압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재투표 가능성?[편집 | 원본 편집]

사실상 재투표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게 영국 내에서도 중론인 듯. 영국 하원 홈페이지에 브렉시트 '재투표' 청원은 한국시간 6월 26일 오전 0시로 160만명을 넘어 섰지만 영국 주간지 더위크는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를 어길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정치적 자살' 행위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7][8] AP는 "재투표는 현재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후회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재투표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탈 EU파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재투표가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7월 9일, 영국 국민 412만여명이 서명한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투표 청원을 영국 정부가 공식 거부했다.[9]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