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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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Mercedes-Benz
Mercedes benz logo1989.png
법인 정보
종류 자회사
산업분야 자동차
창립 카를 벤츠
1886년
본사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
웹사이트 영어 - https://www.mercedes-benz.com/en/
대한민국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The Best or nothing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고급승용차의 대표 브랜드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브랜드이며,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모회사는 다임러 AG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태동기[편집 | 원본 편집]

고틀립 다임러빌헬름 마이바흐자전거에서 영감을 얻어 단단한 목재 프레임의 원시적인 형태의 모터사이클, Daimier Reitwagen을 제작하였다. 목재 프레임에 엔진을 수직으로 장착한 이 모델은 1885년 8월 28일, 가스 또는 가솔린으로 구동 장치를 탑재한 자동차로 특허를 취득했다. 한편, 카를 벤츠는 그가 개발한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개발했고, 1886년 1월 29일, 가스 엔진으로 작동되는 자동차로 특허를 취득했다. 카를 벤츠가 취득한 특허는 세계 자동차 역사의 출발점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시작[편집 | 원본 편집]

1926년,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불어닥친 경제공황으로 인해 잘 나가던 카를 벤츠의 회사인 벤츠 엔 시에[1]고틀립 다임러가 설립한 회사인 다임러-모토른-게샬프트[2]는 합병을 선언하였고, 사명을 다임러-벤츠(Daimler-Benz)로 정했다.

다임러-벤츠는 1926년 베를린 모터쇼를 통해 최초의 다임러-벤츠 모델을 선보였고, 이후 생산되는 모든 제품에는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명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메르세데스(Mercedes)는 1902년 공개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메르세데스 모델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름의 의미는 스페인어우아함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메르세데스라는 명칭은 오스트리아 판매업자이자 카레이서였던 에밀 옐리네크가 다임러-벤츠에 주문제작한 경량자동차에 붙여진 이름으로, 유례는 에밀의 딸인 메르세데스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현재 벤츠를 상징하는 삼각별 모양의 엠블럼은 1916년부터 다임러가 사용해온 세 꼭지의 별(Three point star)을 벤츠의 월계관 로고가 둘러싸는 형태로 두 기업의 연합을 의미한다.

1928년, 메르세데스-벤츠는 고성능 레이싱카인 "메르세데스-벤츠 SSK[3]"를 발표하였다. 이 차량은 250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직렬 6기통 7100cc 수퍼차저 엔진과 4단 변속기를 조합하여 최대 190km/h의 속도를 자랑했다. 또한 1929년 발표한 고급 자동차인 "뉘르부르그"는 13일동안 2만km를 연속주행하면서도 고장이 발생하지 않아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다.

1930년에 들어서 메르세데스-벤츠는 크고 안락한 고급 자동차인 리무진에 주력하였고, 이는 국가 원수나 고위직과 같은 부와 명예를 갖춘 상류층을 겨냥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독일의 황제였던 빌헬름 2세가 열렬한 팬이었고, 독일 육군 원수 파울 폰 히데부르크는 당시 희귀한 모델이었던 블리첸 벤츠를 소유했다 전해진다.

1936년, 세계최초로 디젤 엔진을 장착한 승용차, 메르세데스-벤츠 260D를 발표했다. 3년여의 강도높은 개발기간을 거쳐 탄생한 260D는 4기통 2550cc 엔진을 통해 최대 45마력의 출력을 갖추었다. 이는 루돌프 디젤이 실용적인 디젤 내용기관을 발명한 지 40여년이 지난 시점에 등장한 것이었다. 다만 이 당시 디젤 엔진의 기술력은 가솔린의 성능에 못미치는 것이었지만, 연료소모가 적고 연비가 좋아 오래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해 택시로서 주로 사용되었고, 이 차량은 1940년까지 약 2천 여대가 생산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편집 | 원본 편집]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메르세데스-벤츠는 당시 독일을 장악했던 나치와 총통인 아돌프 히틀러의 정책에 따라 군수물자를 조달하였다. 주로 군사장비, 차량, 군함이나 비행기에 사용되는 모터 등 핵심 부품을 납품하였고, 히틀러 역시 벤츠의 고급 리무진 모델을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하는 등 전범기업이라는 흑역사가 잠시 도래했다. 전쟁이 종반부로 치달으면서 연합군은 독일 본토에 대한 무자비한 융단폭격을 감행했고, 이 여파로 메르세데스-벤츠의 주요 생산 공장들 역시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1946년 전쟁이 끝나자 메르세데스-벤츠는 자동차 생산을 재개하였고, 1947년 발표한 메르세데스-벤츠 170V를 통해 재도약을 시작한다. 그리고 1954년, 불후의 명작으로 칭송받는 메르세데스-벤츠 300SL을 발표하였다. 경주용 레이싱카를 기본으로 제작된 300SL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인 걸윙도어 및 6기통 2,996cc 215마력을 자랑하는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속도는 250 km/h에 달했다. 이 모델은 큰 인기를 구가하여 1963년까지 3,258대가 생산되었다. 또한 후속작인 190SL을 발표하며 현존하는 SL 클래스의 시초가 되었다.

중흥기[편집 | 원본 편집]

1959년, 1926년에 이어 BMW와 합병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두 회사의 기업 구조와 지향점이 매우 상이하였고, 결정적으로 두 회사 모두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하였기에 협상은 무산되었다.

1960년대 이후로 메르세데스-벤츠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그 옆에 헤드라이트가 위치하는 디자인을 적용하였고, 1970년대에는 엔진 배기량에 따른 숫자를 모델명에 적용하였다. 1982년에는 소형 세단의 원조격인 190 시리즈를 발표하였고, 당시 미국에서 연료 소비 규제 및 연비 규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4기통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장착하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190 시리즈는 미국 소비자들이 외면하였고, 후에 6기통 엔진과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후에야 시장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190 시리즈의 성공으로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입지가 탄탄해 질 수 있었고, 사업 확장을 통해 당시 미국인들의 취향에 어울리는 SUV 차량을 미국 시장에 진출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1992년, 당시 CEO였던 베르너 니퍼의 지휘아래 고급 세단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1993년부터 높아진 인건비와 매출 부진, 적자 상태였던 포커사를 인수하는 등의 영향으로 당시 약 11억 8천 마르크의 커다란 손실은 겪으며, 기업 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위기를 돌파할 대책으로 시장성이 높은 대중적인 소형차를 타겟으로 잡았고, 현지 생산을 적극 추진했다. 이 전략에 따라 199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소형 컨셉트카 "비전 A93"이 발표되었고, 양산형 모델은 1997년,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로 명명되어 출시되었다.

또한 현지 생산 전략을 적극 추진하여 전체 생산비율이 2%에 불과했던 해외 생산비율을 늘려나갔다. 미국 알라배마주의 공장에서 1997년부터 미국인의 취향에 맞는 SUV 모델인 M클래스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는 도시형 소형차 브랜드인 스마트를 런칭했다.

현재[편집 | 원본 편집]

1998년, 메르세데스-벤츠는 적극적인 세계화 전략을 목표로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인 크라이슬러를 인수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를 출범시켰다. 또한 2002년에는 호화 럭서리 세단 브랜드인 마이바흐를 부활시켜 생산라인에 편입하였고, 2003년에는 영국의 유명 스포츠카 제조사인 맥라렌콜라보레이션을 결성해 SLR 맥라렌이 출시되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인수한 크라이슬러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했고, 보다못한 다임러 그룹에서 2007년 5월, 다시 미국 펀드 회사인 서버러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에 매각을 결정한다.

2008년에는 고든 바그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고, 그의 지휘아래 보수적인 디자인을 견지하고 있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 디자인들[4]이 한층 젊어지고 혁신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생산차종[편집 | 원본 편집]

승용차[편집 | 원본 편집]

쿠페/스포츠카[편집 | 원본 편집]

RV/SUV[편집 | 원본 편집]

상용차[편집 | 원본 편집]

단종[편집 | 원본 편집]

기술력[편집 | 원본 편집]

모터스포츠[편집 | 원본 편집]

메르세데스-AMG[편집 | 원본 편집]

메르세데스-벤츠는 자회사로서 고성능 튜너인 메르세데스-AMG를 갖추고 있다. SLS AMGAMG GT처럼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주력 시장인 일반적인 벤츠의 차대를 이용하여 고배기량, 과급기 등을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소형 세단인 C클래스의 차체에 고배기량 고성능 엔진을 올려 스포츠카에 근접한 성능을 보여주는 메르세데스-AMG C63과 같은 식으로 여라가지 AMG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국내 진출[편집 | 원본 편집]

1985년, 말레이시아 계인 레이싱홍 그룹은 한성자동차를 설립하여 대한민국에 진출했다. 벤츠 차량을 수입하고 판매를 겸하면서 서울수도권의 핵심지역 유통망을 구축한 뒤, 독일 본사의 대한민국 현지 판매법인 설립 당시 지분을 투자하여 정식 딜러로서 기득권을 확보했다. 현재 메르세데스-벤츠와 한성자동차는 지분율 51:49의 비율로 합작형태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인식[편집 | 원본 편집]

딜러사의 고가 정책이 초창기부터 꾸준하게 이어져왔고, 2000년대 들어 수입차 시장이 대폭 개방되면서 BMW, 아우디와 같은 독일차, 도요타, 닛산 등 일본차, 포드, 캐딜락 등 미국차 등이 대거 한국시장에 진출하였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벤츠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BMW, 아우디는 정가가 무색할 만큼 할인을 많이 해주면서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피튀기는 경쟁 와중에도 벤츠는 가격 할인도 거의 없으며 여전히 고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당 1억~2억원 수준인 고급 세단 S클래스의 독보적인 판매량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부유층들이 벤츠를 바라보는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그만큼 높은 가격을 지불한 만큼의 사회적 인식이 벤츠=고급차=부유함이라는 반증이다. 하지만 해외 가격을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벤츠 가격은 굉장히 비싼 편에 속하며, 이에 대한 비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성자동차의 실 소유주인 말레이시아의 레이싱홍 그룹의 고가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발생되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견해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논란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런 비판을 의식한 독일 본사에서 레이싱홍 그룹에 주의를 주기도 했다.

흑역사[편집 | 원본 편집]

  • S클래스 골프채 파손사건
2015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핫이슈. 2억원 상당의 고급 세단인 S클래스의 차주가 자신의 차량에서 주행중 시동이 꺼지는(...) 치명적인 결함[5]이 발생하였고, 여러차례 서비스 센터를 들락거리며 문제해결을 원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구입한 딜러사에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주인이 문제의 차량을 딜러사 앞에 세워놓고 골프채를 휘둘러 문제의 차량을 파손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서 차주가 직접 글을 게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급기야 공중파 뉴스에 보도되는 등 벤츠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결국 신차로 교환해 주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같은 차종을 보유한 차주들도 결함이 확인되면 리콜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비판을 하고 있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메르세데스(Mercedes)를 국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발음을 한다고. 미국에서는 "멀시디스"와 유사한 발음이 대세라고 하며 본토인 독일은 "메흐체더스", 중국에서는 거두절미하고 "뺀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더라.
  •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경호용 의전차량으로도 사용된 역사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육로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였고, 당시 뉴스 화면에는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S클래스 풀만가드 방탄차량의 모습이 비쳐지기도 했다.

각주

  1. Benz & Cie, 영어로 Benz & Company
  2. DMG, Daimler-Mororen-Gesellschaft, 영어로 Daimler Motors Corporation
  3. 독일어로 Super Sport Kurz
  4. 경쟁사인 BMW아우디가 역동적이고 스포티한 분위기의 디자인을 발표하던 2000년대 초반에도 벤츠의 디자인은 중후하고 점잖은 클래식한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었다.
  5. 특히 고속도로에서 주행중 시동이 꺼지고, 스티어링휠이 잠겨 자칫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위기를 겪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