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해방이 온다


메아리의 멤버 윤선애가 부른 버전.

김세진, 이재호 열사 30주기를 맞아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 작곡자 본인이 불렀다. 동영상 앞부분에서도 본인이 설명하지만 작곡자는 1987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에서 포닥으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학원강사로서 과학 영재교육을 하고 있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민중가요 작곡가 이성지(본명 이창학)가 1986년에 분신 자결한 학생운동가 김세진, 이재호 열사를 추모하며 쓴 민중가요.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서울대학교 81학번이며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이성지가 1986년에 반 자주화 투쟁의 일환으로[1] 전방 입소 거부 운동을 벌이다 신림사거리에서 분신 자결한 김세진, 이재호(서울대 83학번) 두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열사들이 걸어간 투쟁의 길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담아 작사, 작곡하였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86년 당시, 대학교 2학년 남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전방 부대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게 되어 있었다. NL 계열의 운동권에서는 이를 미제의 용병을 양성하는 것이라며 대대적인 거부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하였고, 서울대의 경우 이 해에 2학년이 되는 85학번 학생들을 중심으로 거부 운동을 조직하여 신림사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는 4학년 선배로서 동생들의 투쟁을 갖다 지휘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신림사거리에서 2학년들이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고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었을 때 두 열사는 신림역 7번 출구에 위치한 4층 건물 옥상에 올라, 몸에 불을 붙이고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을 외쳤다. 김세진 열사는 몸에 불이 붙은 채로 팔을 흔들었고, 이재호 열사는 몸에 불을 붙인 채 그대로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이렇게 분신으로 투쟁한 열사들이기 때문에, '그대 타는 불길로'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2]

보컬은 메아리의 멤버인 84학번 윤선애가 불렀다. 본격 서울대생을 위해, 서울대생이 쓰고, 서울대생이 부른 명실상부한 서울대 노래. 1980년대에 격렬하게 벌어졌던 서울대 학생운동을 상징하는 곡이다.

가사[편집 | 원본 편집]

그 날은 오리라,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그 날은 오리라, 해방으로 물결 춤추는
벗이여, 고이 가소서, 투쟁으로 함께하리니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둠 뒤집어 새 날 새 날을 여는구나.
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 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차분한 가락과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낸 가사로, 곡 분위기 역시 고인에 대한 추모의 자리에서 부르기에 알맞다.

6월 항쟁 이후인 1989년도에 노찾사가 2집 앨범을 낼 때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으나, 아직 정권이 노태우 정권이었던 관계로 음반 심의제도가 남아 있어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공식 음반으로는 발표되지 못하였다. 공식적으로 음원이 나온 것은 2005년에 작곡자 본인의 작품집을 통해서였고, 이 때 보컬은 윤선애가 불렀다.

1991년 분신정국 때 투쟁의 한 길로와 함께 눈물바다가 된 캠퍼스들을 뒤덮은 곡이다. 학생동지들이 잇따라 분신자결을 하면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이걸 부르고, 투쟁의 한 길로 부르며 열사의 길을 따르겠다고 맹세하고, 또 분신자결하는 동지가 나오고...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현재도 고인, 즉 열사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뜻을 담아서 많이 부르곤 하는 곡이다.

  1. 서울대 학생운동은 전반적으로 인문대 및 사회대와 사범대가 주도한 PD 색채가 강했지만, 자과대와 공대를 중심으로 NL 성향의 학생운동도 분명 존재했다. 이들은 혹부리우스의 주체사상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는 않는 비주사 NL로서 따로 '관악 자주파'로 지칭한다. 김세진 열사는 자과대 미생물학과(현 생명과학부), 이재호 열사는 사회대 정치학과 출신이다. 현재도 서울대 안에는 NL과 PD의 흐름이 공존하고 있다. 전자는 6.15 연석회의, 후자는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및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별 학생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PD, 그것도 같은 국제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변혁당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보니 트로츠키주의 계열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2. 2년 후인 1988년에 숭실대에서 박래전 열사가 같은 방법으로 자결하였다. 이번에는 숭실대 학관 옥상(현재는 미래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