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賢淑. 이명은 박정숙(朴貞淑).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4년 3월 28일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 소촌리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재학하다가 1929년 5월 장매성의 권유를 받아들어 학생결사 소녀회(少女會)에 가입했다. 소녀회는 "여성은 가정인으로서 남성 때문에, 무산 대중으로서 자본계급 때문에, 조선민족으로서 일본제국주의 때문에 3중의 압박을 당하고 있으므로, 현 사회조직을 파괴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공산제도의 새로운 사회를 창설함으로써 조선 여성으로 하여금 이들의 아박으로부터 면하게 하자"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회원들은 매월 월례연구회를 갖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1929년 6월에 광주학생의 조직적 활동을 위해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긴밀한 연락을 맺으며 활동하였다.
독서회중앙본부가 독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지원활동을 목적으로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학교 독서회 및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기로 했는데, 이때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하였다. 이러한 소녀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박현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회원들과 함께 시위 도중 부상당한 한인 학생들을 치료하며, 식수를 공급하고 돌멩이를 날라줬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1930년 1월 15일 체포되었고,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으며,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1] 1981년 1월 23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박현숙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8년 10월 2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유해를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