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朴鎭浩. 이명은 박내만(朴乃萬), 박명유(朴命遊), 박영만(朴永萬).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 1월 6일 경상북도 대구부 동성정 3정목에서 츨셍했다. 일찍이 일본 도쿄로 유학가서 학업에 몰두했으며, 잡지 동경조선학생친우회가 발간한 <신조선> 발매에 협조했다. 그러던 1919년 12월 28일 잡지 <신조선> 발행인 이달(李達)과 만나서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했다. 이후 1920년 1월 23일 장회관에서 이달로부터 잡지 <신조선> 제1호를 건네받고, 조선에 들어가서 구독자를 모집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이를 수락하여 조선으로 건너가서 1월 28일 대구부 동성정 3가에 위치한 부친 박화여의 집으로 돌아왔다.

1920년 1월 30일 대구 서문내 숙소에 거주하는 이기세를 찾아가서 신조선을 보이고 구독할 것을 권했다. 또한 2월 1일경 대구 서천대전정에 거주하는 정래표를 찾아가서 조선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의뢰해 30,000원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또한 영흥여관에서 이기세에게 신조선 제1호의 신문과 태극문양 만년필을 건넸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금 모집을 권유했다. 그러다 정보가 새어 일본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1920년 8월 21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해 공소했으나 1920년 11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2] 이에 상고하려 햇으나 1920년 11월 13일 상고 취하하여 옥고를 치렀다.[3]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박진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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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