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주 (1911년)

朴鍾柱. 이명은 박정일(朴政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1년 5월 5일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광주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조길룡, 김남철 등 광주농고생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고 항일학생비밀결사인 광주농고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비밀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해체된 후 이를 계승하여 확대 개편된 '독서회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결성되었다. 이 회의 운영은 전회원을 4개조로 나누어 각각 조별로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이러한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길러갔다.

1929년 11월 12일, 제2차 광주학생항일운동 시위 때에는 김남철·박석진(朴石珍) 등 독서회원들과 함께 광주농고생 200여명을 지도하여 조길룡(曺吉龍)으로부터 교부받은 인쇄물을 학생들에게 배포하면서 만세시위에 나섰다. 이로 인하여 1930년 1월 17일 일경에 붙잡혔으며, 그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독서회운동과 관련하여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여 1931년 6월 13일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 해남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7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박종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유공자 공훈록[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