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 (1898년)

朴東熙(또는 朴東禧).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생이며 함경북도 길주 출신으로 알려졌다. 그는 1920년 만주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2중부지방회(中部地方會)의 제6지회원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선전부(宣傳部) 스빠스카야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문창범의 명으로 스빠스카야 비행장에서 조종술을 배운 뒤 8월 중 국내로 들어와 일본의 소위 ‘병합기념일’에 관공서의 폭격을 계획하였다.[1] 1926년 고려공산당 기관지 선봉(先鋒)의 주간(主幹)을 역임하였으며, 극동국립출판사 한인과 선임 편집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9월 18일, 박동희는 러시아의 국가보안부에 의해 반혁명 인사로 낙인찍혀 긴급 체포된 뒤 극동변강 내무인민위원부에서 최고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938년 3월 31일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되었다. 1956년 7월 30일 극동군관구 재판소의 결정으로 복권되었다.[2]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박동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독립유공자 공훈록[2]

각주

  1. 일제 정보기록 "러시아 공산당 연해도 고려부의 3년간 경과 - 간도 총영사 서신"(1925년 10월 22일)[1]에 해당 기록이 있다.
  2. 스탈린시대(1934~38년) 정치탄압 한인(고려인) 희생자들(구스베틀라나편저, 2004)에 해당 내용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