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국 Status Civitatis Vaticanæ |
|
---|---|
국가 교황 찬가와 행진곡 |
|
나라 정보 | |
수도 | 바티칸 시티 |
공용어 | 라틴어, 이탈리아어 |
국교 | 가톨릭 |
정부유형 | 선거군주제 |
교황 | 프란치스코 |
기타 정보 | |
화폐 | 유로 |
도메인 | .va |
국제전화 | +379 |
이전 나라
|
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æ /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국토면적은 0.44km²로 독도의 2배 정도 크기에 불과하며, 인구도 최소 300명, 최대 1,000명 정도(일단 공식적으로는 약 800~1,000명 정도가 바티칸 국적이나, 실제로 바티칸에서 침식(寢食)을 다하는 사람의 수는 300명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국외에서 체류중이라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바티칸에서 살지 않는다고 해도 바티칸 국적인 사람을 바티칸 국민으로 헤어리면 인구 통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원[편집 | 원본 편집]
피핀의 기증으로 성립된 로마 교황령이 그 기원이다. 교황령은 약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영토적 변화는 있었지만 이탈리아 중부 최대의 세력으로 존재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한때 사라지긴 했지만 빈 회의로 교황령은 다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 통일 와중에 로마를 제외한 모든 교황령 영토가 이탈리아 왕국에게 넘어갔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와중에 로마 주둔 프랑스군이 철수한 틈을 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로마까지 점령하고 교황령을 완전히 폐지했다.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는 교황과 이탈리아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 인구의 99.9%를 차지하는 카톨릭 교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자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바티칸 언덕 일대의 0.44km²를 교황의 영토로 인정하면서 현대 바티칸 시국의 역사가 시작됐다. 1943년 로마가 나치에게 장악되면서 위기에 처했지만 어찌저찌 살아남았다.
면적[편집 | 원본 편집]
국토면적과 인구로 보자면 대한민국의 일개 자치구(서울특별시 중구조차 면적은 10km², 인구는 약 12만 명에 이른다)만도 못한 보잘 것 없는(?) 국가이지만, 세계에 미치는 정신적, 종교적 영향력은 일개 자치구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힘을 갖는다. 바로 바티칸 시국(市國)의 수장인 로마 교황이 전 세계에 약 12억 명에 이르는 방대한 수의 로마 가톨릭교도의 수장이자 리더이기 때문. 이 12억의 신도가 5대양 6대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보니 교황의 영향력도 전 세계에 미치며, 잘 조직된 가톨릭 교계(敎階) 시스템과 교회 조직을 통해 그 힘은 전 세계에 파급되곤 한다.
문화, 정치[편집 | 원본 편집]
일단 '성좌(聖座)'를 빼고 순수하게 바티칸 시국만 놓고 보자면 그 힘과 영향력은 훨씬 제한적으로 줄어들지만, 그럼에도 서양 문화의 정수가 담긴 바티칸의 온갖 예술품과 박물관 전시품들은 수많은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고 있고, 가장 최근의 경우 2013년 3월에도 드러났지만 새로운 바티칸 수장을 선출하는 절차인 콘클라베(conclave)는 바티칸(과 로마 교회)의 '일개 행사'라고 보기에는 언어도단으로 여겨질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모든 주권은 교황에게 있는 신정국가고 그 밑의 주교회의에서 입법, 사법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하지만 바티칸 시국 성립 이래 교황이 절대적 권력을 남용한 적도 없고 철저히 종교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바티칸 시국의 국민 가운데 일반 시민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바티칸 시국의 국민은 모두 교황청 소속 사제들이다.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일반 평신도들은 대부분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나 국토가 워낙 좁은 관계로 바티칸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들은 외교공관을 이탈리아 영토에 두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주 이탈리아 대사와 주 바티칸 대사가 겸직하지 않고 서로 별개로 따로따로 대사관을 두고 있을 정도로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을 예우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중국 내 주교 임명권에 대한 충돌로 바티칸 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 상태로, 대신 바티칸 시국은 대만(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1]
경제[편집 | 원본 편집]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의 경제는 세계 각지의 교구에서 보내오는 헌금, 그리고 관광객에 의존하고 있다. 그 밖에 기념우표 등을 판매한다.
통화로는 20세기에는 이탈리아 리라화를, 21세기에는 유럽연합의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 외 국가중 모나코, 안도라, 산마리노와 함께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이다. 대신 바티칸 시국은 숫자가 한정되긴 하지만 제한적인 유로화 동전 주조권(!)이 있다. 물론 실제 주조는 이탈리아가 하고 발행을 바티칸 시국이 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이를 바티칸 유로 동전이라 하며 이 동전은 일반 유로 동전과 달리 교황청의 독특한 디자인과 도안이 반영된다. 실제 화폐로서의 역할도 가능하지만, 워낙 소량 주조다보니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 액면가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군사[편집 | 원본 편집]
국가방위는 모두 이탈리아가 대행하고 있다. 대신 사코 디 로마에서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선보인 필사적인 충성심을 인정받아 바티칸과 영구 계약을 맺은 전통의 스위스 용병 근위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2] 이들이 각종 의전 외에도 실질적인 경호 및 경비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
소소한 정보[편집 | 원본 편집]
- 국가 전체에 걸쳐 통행금지제도를 유지하고 있어, 모든 출입구가 폐쇄되고 통제되는 23시 30분부터는 특별한 허가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바티칸 출입이 아예 금지된다.
- 입법, 행정, 사법의 3권 분립이 이루어지지 않아, 수장인 교황이 모든 제반 업무를 총괄하는 일종의 전제군주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 하루에 약 400kg 분량의 각종 우편물과 소포가 쏟아져 들어오며, 매일 그 2배에 달하는 양이 국외(?)로 송달된다.
- 상시 거주자가 아닌, 고용된 직원의 수는 약 3,000명에 달하지만 이들 모두 사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실제로 바티칸에는 개인 소유라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은 교황에 부속된 것으로 여겨진다.
- 언론기관은 공영방송 1개 밖에 없다.
- 바티칸의 차량 번호판은 '바티칸 시국(Stato Citta Vaticano)'의 약자인 'S.C.V.'로 시작한다.
각주
- ↑ 과거 냉전 시기에는 자유주의 국가들은 대만과, 공산주의 국가들은 중국과 수교하는 것이 원칙이였으나 이후 냉전의 종식과 함께 중국이 개방정책을 수용하게 됨으로서 자유주의 국가들과 중국이 수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이 때 중국이 '하나의 중국', 즉 '대만 또한 중국(의 것)이다'는 원칙을 내세워서 대만과 수교한 국가들과는 수교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서 현재 많은 국가들은 대만과의 수교를 끊은 상태이다. 바티칸은 자유주의 국가이면서 예외적으로 대만과 수교중인 국가 중 하나이다.
- ↑ 단, 현대 사회에서 용병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실질적으로는 경찰 병력이지 군대가 아니다.
북유럽 | |
---|---|
동유럽 | |
서유럽 | |
남유럽 | |
일부승인: 일부 유엔 회원국에게 승인받은 나라. · 비회원국승인: 유엔 비회원국에게만 승인받은 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