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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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원본 편집]

Weimarer Republik
정식국호는 나치 독일과 같은 독일국Deutsches Reich이다.

성립[편집 | 원본 편집]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빌헬름 2세 황제는 결국 군부에 끌려다니며 사실상 독일 제국은 군부 독재국가 비스무리하게 되어 가고 있었다. 한편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당시 전쟁법상 이미 불법이었음에도 독일 제국 해군은 대서양 항로에서 이를 감행하게 된다.

이 와중에 미국의 상선 루시타니아호가 격침되었다. 비록 민간인 상선이었지만 연합국으로 향하는 많은 전쟁물자가 실려있었다. 애초에 이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도 미국을 상당히 고깝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민간인 공격은 전쟁범죄였고 미국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실수였다며 사죄하자 미국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서 치머만 전보사건이 드러나면서 급기야 미국은 고립주의를 포기하고 참전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연인원 40만명을 투입하며 연합국을 혼자서 하드캐리한다.

1918년 수병들은 출동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미 독일 해군뿐만 아니라 독일 국가 전체의 전쟁수행 역량 자체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 와중에 출동하라는 것은 수병보고 죽으러 가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것이 독일 11월 혁명이다. 한편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은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나 우익 세력에게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군부마저 고개를 돌려버린 황제는 퇴위를 선언하고 네덜란드로 망명한다. 한편 연합국 측은 전범인 황제나 독일군부와는 회담하지 않겠다고 완고하게 나왔고 이를 맡기기 위해 독일 사회민주당, 가톨릭 중앙당, 독일 진보당 삼당이 연립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이를 독일 국회의사당 발코니에서 선포하니 이것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우익좌익의 정줄놓은 극한대립과 프로이센 군국주의자들의 소굴인 베를린을 피해 안전한 바이마르란 어느 듣보잡 동네에서 헌법이 기초되었고 그렇게 공화국의 별명이 생겨났으며 이 나라 덕분에 바이마르는 더이상 역사에 영원히 듣보잡이지 않게 되었다.

이모저모[편집 | 원본 편집]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존속했던 독일의 공화국이다. 이 나라는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 첨단 헌법

프랑스와 함께 대륙법의 쌍두마차답게 매우 뛰어난 헌법으로 유명하다. 어느 정도냐면, 반세기가 지난뒤 어느 동방의 반도국가의 6공화국 현행 헌법에 영향을 미쳤을 정도이다. 심지어 서독헌법이나 현재 독일연방공화국 헌법보다 더 진보적인 면을 가진 물건.
스위스의 직접민주제, 미국의 대통령제, 영국의 의원내각제, 독일의 지방자치제의 장점만을 모아서 만들었다. 단지 바이마르헌법의 이른바 자기파괴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였고 이를 악용한 나치스에게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는게 그저 안습.
정작 그렇게 나치와 히틀러가 혐오한 바이마르 헌법이지만 히틀러는 수권법으로 이 헌법을 정지시켰을 뿐이지 정식으로 폐지한적은 없다고 한다.

  • 하이퍼 인플레이션

전후 연합국으로 부터 1320억 마르크의 전쟁배상금을 강요당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제국 시절, 전쟁을 위해 극한까지 모든 국가 경제력을 모조리 다 쥐어짰고 그결과 남아나는게 없어서 정부가 무너지면서 군부또한 GG를 친 결과가 패전과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이었으므로 갚아줄 돈따윈 있을리가 없었다. 사실 프랑스야 보불전쟁에서 패전이후 영토 뜯기고 배상금 물어준 트라우마와 1차대전 서부전선 주 전장이 자기 국토가 되었고 청년의 3분의 1이 전사하는 엄청난 손실을 겪었기에 다시는 독일이 일어서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로 이런 배상금을 물린것이다.
그 결과 독일은 뭐 갚아줄 돈이 없어? 그럼 돈을 찍어내면 되지! 라면서 돈을 마구 찍어냈다. 그결과 독일의 무지막지한 인플레이션은 오늘날 머나먼 동방의 한 반도국가 경제교과서에 반드시 언급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고 말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다음의 일화를 한국의 경제 교과서는 전한다.

한 부인이 있었는데 백만 마르크의 예금을 예치한 채로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만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귀국하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난뒤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된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은행으로 부터 한장의 편지가 왔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제난이 가중되어 더이상 은행을 유지할 수가 없어서 예금주 님들에게 예금을 돌려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금된 금액 백만 마르크와 이자 사십만 마르크 를 동봉합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편지 봉투를 열어보았지만 거기엔 달랑 우표한장이 나왔는데 그게 150만 마르크짜리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잔돈 10만 마르크는 안 보내주셔도 됩니다." (...)

한편 영국의 케인즈를 비롯한 일단의 학자들은 연합국을 향해 당신들은 유권자들에게 묶인 귀머거리에 장님에 불과하며 한세대동안 독일을 압살하려고 한다며 이를 강하게 비판하였고, 전쟁배상금 지불을 강요하며 자르 지방을 프랑스군이 점령하자 바이마르 정부는 노동자들 총 파업을 이끌어내며 완강하게 저항하자 연합국 측은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이로서 독일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독일 부채 탕감방안이 논의되었고 이에 따라 도슨안이 통과되어 실행되며 독일은 한숨 돌리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연합국 비판은 히틀러의 집권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도 또한 아이러니... 하지만 공화국의 구멍에도 볕들날이 오는줄 알았건만 이번엔 1929년 월가의 주가 대폭락으로 야기된 경제 대공황을 미국 자본이 많이 몰린탓에 직격으로 맞아버린다. 안습

  • 그리고 히틀러 집권의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히틀러제3제국 문서를 참고하라.

그렇게 바이마르 공화국은 멸망했다.

멸망[편집 | 원본 편집]

히틀러라는 웬 남쪽지방 듣보잡 정치인이 혜성처럼 나타나 귀기 어린 연설실력으로 나치당을 하드캐리하며 원내 1당으로 부상시키는 데 성공한다. 거기다가 하늘마저도 나치와 히틀러의 편인듯 대공황까지 겹쳐지면서 나치당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상승세를 탄 반면 바이마르 공화국은 국가막장 테크를 착실히 밟아 나간다.

때마침 웬 정신이상자가 국회의사당에 불을 질러버리고 그길로 공화국 부정세력의 쌍두마차인 공산당은 해산당했다. 공산당이 망하자 다음 차례는 사민주의자들이었고 다른 우익세력들마저도 저딴 보헤미안 상병 따위 우리 손아귀에 있습죠 깔깔깔 거리다가 거하게 뒷통수를 쳐 맞게 된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도 않았고 평소 미워하던 유대인 색체가 강한 공산당마저도 못미더웠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선택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총리에 오른 히틀러는 수권법을 통과 그날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멸망했다.

대통령인 힌덴부르크 옹 마저도 서거하자 그가 대통령까지 먹게 되면서 그렇게 총리겸 대통령, 총통이 되어 세계를 암흑의 길로 몰아넣고 독일을 파탄내게 된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은 엄청난 위인들의 생산지(?)였으며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들을 뽑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