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해전

밀레 해전
군사 충돌 정보
날짜 기원전 260년
위치 지중해 시칠리아 북동부 해역
결과 로마의 승리
교전단체
로마 카르타고
두일리우스(Gaius Duilius)
한니발[1]
병력:
140여척
병력:
130여척
손실:
50척 이상 손실

밀레 해전(영어: Battle of Mylae)은 로마카르타고시칠리아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발발한 1차 포에니 전쟁에서의 해전이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두 나라 중간에 있는 지중해를 건너지 않고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곧 인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로마의 육상 전력은 상당히 강한 편이었지만 적국인 카르타고의 함선과 같이 기동력 있는 함선은 로마 자신 뿐 아니라 로마의 동맹국들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는 조직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하였고, 이것의 결과로 자신감이 붙은 로마가 지중해로 진출하면서 발발한 로마와 카르타고간의 첫 번째 해전이 바로 이 밀레 해전이다.

로마의 준비[편집 | 원본 편집]

애초에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인들에 비해서 뛰어난 해양민족은 아니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상당히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해전 경험이 없다 보니 카르타고가 상상하지 못한 별의별 기술과 전술을 개발하는 엄청난 창의력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우선 로마인들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의 힘을 빌어서 함선과 선원을 준비하였다. 난파되어 버려진 카르타고의 함선을 모방하여 근성으로 1년 만에 125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건설하였던 것. 또한 이 함선 건조와 동시에 육상에서는 노수를 양성하는 노 젓는 훈련을 실시하여 즉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로마는 뒤떨어지는 해상 전술을 보완하기 위하여 획기적인 변형을 주게 되었다. 일단 로마의 병력이 백병전에서는 카르타고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해상에서 지상 전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여 커버스(corvus)[2]라는 회전식 부교를 창안하였다. 이것은 길이가 18피트에 달하는 구조물로 함수에 거의 수직으로 세워두고 방향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고안된 장치로 적함이 가까이 오면 적선의 갑판에 걸쳐 끝 부분에 있는 갈고리가 적선을 붙잡게 되고, 이 커버스를 타고 적함에 뛰어 올라가 백병전을 수행할 계획을 세웠던 것. 여기에 추가로 함수와 함미에 일종의 포탑인 투석기를 장착하여서 아예 원거리에서부터 적함을 포격할 수 있는 장치도 개발하였다. 종래의 함선의 원거리 전투는 활을 쏘는 것 정도가 전부였는데 아예 먼 거리에서 돌덩이를 슝슝 날려댈 수 있게 하였던 것. 로마는 이런 장치들을 비밀병기로 하여서 밀레 해전에서 기습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진행[편집 | 원본 편집]

기원전 260년, 시칠리아 북동부 해안에서 두 나라의 함대가 서로 조우하면서 1차 포에니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게 된다. 이 해전은 로마와 카르타고가 최초로 격돌한 해전이었다. 로마는 집정관 두일리우스가 로마 함대를 지휘하였고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지휘하였는데 양측의 함대는 각각 100여척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카르타고 함대는 갓 바다에 나온 로마 함대를 과소평가하여 별다른 진형을 갖추지 않고 바로 닥돌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두에 선 함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복병에 부딛히게 된다. 로마 함선에 장착된 커버스가 카르타고의 함선들을 붙잡아버린 것. 이 때문에 카르타고의 장기인 기동력이 완전이 사라져 버리고 함상 전투에서 선두함들이 그대로 유린당하게 된다. 이 꼴을 본 후미의 함선들은 커버스를 피해서 현측과 함수쪽 방향으로 기동하여 충각을 시도하였지만 접근하는 족족 커버스에 잡히고 말았던 것. 결국 카르타고 함대는 전력의 절반 가량인 50여척의 함선들을 로마에 나포당하고 도주하게 되었다.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이 밀레 해전은 새로이 건설된 로마 함대의 첫 해전[3]이자 새로운 해상전술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던 해전이었다. 이 해전의 결과로 카르타고는 제해권을 상실하였으며, 로마는 이 여세를 몰아서 코르시카몰타까지 점령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해선 자체는 결정적인 해전은 아니었지만 로마 함대는 해전에서 카르타고한테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확실히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1차 포에니 전쟁에서 결정적인 해전은 이후에 일어난 에크노무스 해전에 해당한다.

각주

  1. 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바르카와는 다른 인물
  2. 까마귀라는 뜻
  3. 엄밀히 말해서 처음은 아니다. 시칠리아 연안에서 카르타고의 난파선들을 조립하여 어설프게 붙었다가 대판 깨진 전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