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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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흉노 선우
두만 선우 묵특 노상 선우

묵특 선우(冒頓 單于, 기원전 234년경~기원전 174년, 재위: 기원전 209년~기원전 174년) 또는 묵돌 선우는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선우 중 두 번째로 즉위한 흉노 선우다. 가장 위대한 선우로 꼽히며, 흉노 제국의 전성기를 연 인물이다. 그리고 아내와 신하를 자주 죽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선우 즉위 과정[편집 | 원본 편집]

묵특은 두만(頭曼) 선우의 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두만은 묵특보다 그의 애첩의 소생, 그러니까 묵특의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세우고 싶어했다. 한편으로는 월지가 힘 좀 세다고 짜증나게 구는 걸 좀 정리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월지가 인질을 요구하자 그는 아들 묵특을 월지에 볼모로 보낸다. 월지는 볼모를 죽이려고 할 것이니, 보기 싫은 큰아들도 죽이고, 월지를 손봐줄 명분도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두만의 예상대로 계획대로 월지는 묵특이 도착하자마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묵특은 천리마를 훔쳐타고 흉노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한다. 두만의 모든 계획을 비틀어버렸지만 이 일로 아버지의 신뢰를 얻어 만여명의 병력을 지휘하게 된다. 그러나 묵특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는 심복들을 뽑아 기마궁술을 연마케 하는 한편, 자신이 명적, 즉 소리나는 화살로 무엇인가를 쏘면, 일제히 그 목표물을 향해 활을 쏘도록 훈련시켰다. 처음에는 짐승을 쏘면서 연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묵특이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애마를 향해 명적을 쏘았다. 부하들은 당연히 머뭇거렸고, 묵특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머뭇거린 부하들을 죄다 참수시켜버린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연지, 즉 부인을 향해 명적을 날린다.아내1 이번에도 머뭇거린 부하들이 있자 그들도 참수했다.

그리고 기원전 209년, 묵특은 마침내 사냥터에서 아버지를 향해 명적을 쏜다. 그의 부하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우를 향해 활을 쏘았다. 두만은 벌집이 되어 사망하였다. 그는 계모와 이복동생을 차례로 죽이고 스스로 선우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묵특은 오르도스 상실 이후 위축되었던 흉노의 세를 무서운 속도로 불려나가기 시작한다.

초원의 정복자로[편집 | 원본 편집]

이렇게 선우로 즉위한 묵특은 처음에는 외교에서 매우 저자세를 취한다. 동호월지 등이 그새 초원의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성장해있었던 것이다. 동호는 묵특이 선우로 즉위하자마자 사자를 보내 천리마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흉노의 보물로 꼽히던 것이 바로 천리마였다. 묵특의 막하에 있던 모든 신하들은 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묵특은 천리마를 내어준다. 말 한 필 때문에 외교를 망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동호는 그 후 묵특의 아내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흉노의 신하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반대를 외친다. 아무리 외교가 중요하다지만 군주의 아내를 내주는 수모를 당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묵특은, 여자 하나 때문에 외교를 망칠 수 없다며 아내를 동호로 보낸다. 아내 2 아내를 공산품 취급한다

그 다음 동호가 요구한 것은 동호와 흉노 사이의 구탈지라는 땅 천여 리였다. 이 곳은 버려진 땅이어서, 유목 생활에 사용되지 않았다. 묵특의 신하들은 땅을 주어도 손해볼 것이 없으니 그리고 이미 자존심은 저 멀리 갖다 버렸으니 그냥 땅을 주자고 말한다. 그러자 묵특은 갑자기 성을 내며, "토지는 국가의 근본이다. 어떻게 내어 줄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땅을 주자고 말한 신하들을 참하고,참수만 대체 몇 번째야 동호 정벌에 나섰다. 그리고 동호는 순식간에 털린다. 아내는 찾아왔나? 이것이 흉노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동호 정벌을 마친 묵특은 칼끝을 서방으로 돌려 그를 인질로 잡았던 월지를 밟아버리고, 남쪽으로는 누번과 백양이라는 집단을 병합하여 직접적으로 한과 경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나라와의 전쟁[편집 | 원본 편집]

초를 꺾고 막 중원의 지배자가 된 한의 입장에서 무섭게 성장해버린 흉노는 매우 성가신 집단이었다. 가뜩이나 전국시대 말부터 인구가 준 상태인데, 흉노가 툭하면 쳐들어와 약탈과 납치를 자행하니, 국력에 적지 않은 출혈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한고조 유방은 한왕 신(韓王 信, 한신과 동명이인이다)을 대(代) 땅에 봉하여 흉노에 대항하도록 했다. 그런데 한왕 신은 흉노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둘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흉노와 비밀리에 화친을 시도하는데, 유방이 이것을 알고 배신 행위를 했다며 그를 심하게 책망한다. 그러자 신은 자신을 따르는 세력과 함께 흉노에 투항하여 흉노의 장수가 된다.(!!!) 꼭지가 제대로 돈 한고조는 친히 30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묵특은 한고조를 성공적으로 유인하여 백등산에서 완전히 포위시키고, 한고조는 한겨울에 물자가 끊겨 고생하다가 묵특의 연지아내 3에게 뇌물을 바치고서야 겨우 빠져나온다. 당시 한고조를 따른 병력은 열 가운데 일곱은 동상으로 손가락이 잘려나갔다고 할 만큼 비참한 패배였다.

그리고 흉노와 한 사이에 화친 조약이 성립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만리장성을 양국의 경계로 삼는다.
  • 한과 흉노는 형제의 의를 맺는다.
  • 한나라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시집보낸다.
  • 한은 매년 흉노에게 옷감과 비단을 보낸다.

이 조약은 무제까지 한과 흉노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초가 된다. 한의 입장에서는 매우 굴욕적인 조약이었으며, 흉노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승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조약이었다.

여태후를 농락하다[편집 | 원본 편집]

한의 입장에서는 이 화친조약은 더할 수 없는 치욕이었으나, 고조가 유언으로 "흉노와 전쟁하지 말 것"을 남길 정도로 백등산에서의 패배로 인한 트라우마가 컸기에 흉노를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뭐 흉노가 기마전술로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도 한 몫 했고. 한의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여태후에게 묵특이 보내온 농서, 즉 희롱하는 서신이다. 대략 "너네 나라에는 왕이 없고 우리 나라에는 왕비가 없으니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것을 취하는 게 어떻겠는가?" 라는 내용이다. 아내 4를 만드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거다 이게 천년쯤 뒤 유럽에서는 자주 있는 관습이었는데, 시대를 잘못 타서 성희롱이 된 것인가 원수지간에 시전해서 성희롱이 된 것인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태후의 반응이다. 여태후라는 여자는 매우 포악하고 사나운 성질을 가진 여자였다. 한 황실의 최고 어른인 자신을 한낱 오랑캐 따위가 조롱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여태후는 매우 분개하며 흉노 토벌을 명하고 군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중신들이 이를 만류한다. 특히 계포는 10만 대군으로 흉노를 치자고 주장한 여후의 매제 번쾌를 두고 대놓고 "저 새퀴의 목을 쳐야 합니다. 고조 폐하의 용맹함과 경험, 지혜를 가지고서도 흉노에게 대패했는데, 어찌 번쾌 따위가 지금 싸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일갈하는 용자포스를 보여주었다. 결국 여태후는 울며 겨자먹기로 흉노 정벌을 취소하고, 답신을 보낸다. 내용은 대략 "하늘이 내린 선우께서 저를 부르시니, 응해야 마땅하겠으나, 저는 이미 늙어 기력이 쇠하고 머리와 이도 빠져버렸습니다. 다만 선우께서 즐길 수 있도록 황제의 수레 두 대를 보내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한이 흉노에 대해 가지는 공포심은 강렬했던 것이다.

2차 월지 정벌과 최후[편집 | 원본 편집]

화친 조약 이후 한과 흉노의 관계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다. 물론 흉노는 주기적으로 한의 영토에서 약탈을 계속했지만, 둘 사이 주요 군사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약한 놈이 반항을 포기해서 국제 관계가 잠잠해진 꼴. 그러다가 묵특 말년에 이르러 흉노 우현왕이 화친 조약을 파기하고 허난성 지방을 대대적으로 침공한 사건이 일어난다. 한은 군대를 동원하여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흉노를 격퇴하는 데에 성공한다. 묵특은 화친이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하늘이 세우신 흉노의 대선우가 삼가 황제께 문안을 드립니다. 그간 무양하십니까? 지난 번 황제께서 화친을 말씀하신 뜻이 제 마음에도 합당했습니다. 한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관리들이 우리의 우현왕의 영지를 침범하여 모욕을 가하고 우현왕 역시 선우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후의(後義), 로후(盧侯), 난지(難氏) 등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나라 관리들과 다투어 우리 두 군주들의 약속을 깨뜨리고 형제의 정을 이간시켰습니다. 황제로부터 그 일을 책망하는 편지가 두 번이나 도착했으므로 우리도 사신을 보내 편지로 알렸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고 한나라 사자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가 우리와 화친하지 않겠다면 우리도 이웃나라와 가까이 지낼 수 없습니다. 오늘 흉노의 작은 관리가 우리의 화친 약속을 깨뜨렸기 때문에 그 책임을 우현왕에게 물어 벌로써 서쪽의 월지국을 정벌하도록 했습니다. 하늘이 돕고, 관리와 사졸들은 우수하고, 말은 굳셌으므로 월지국을 멸하고 항복한 적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루란(樓蘭), 오손(烏孫), 호게(呼揭)를 포함하여 부근의 26개 국을 평정하여 우리에게 복속시켰습니다. 이로써 활을 당길 수 있는 모든 백성들은 모여 한 집안이 되었습니다. 북변의 땅이 이미 안정되었으므로 원컨대 싸움을 중지하여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말을 길러 앞서의 일을 잊어 옛날의 약속을 회복하여 변경이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당초의 친선관계로 돌아가 젊은이들을 탈 없이 자라고 노인들은 처소에서 평안한 생활을 세세대대로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1]

요약하자면, "하늘이 세우신 흉노 대선우(=본인)가 황제에게 보낸다. 우리 우현왕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너희 땅을 침공한 것은 미안하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우리는 사자를 보냈는데 왜 너희는 사자 안 보내? 이러면 재미없다?" 이 편지를 받고 효문제는 우현왕을 책망하지 말 것(!!!)을 부탁하며 선우에게 옷감 수십 필을 선물로 바쳤다.(...) 한에 대해 절대적인 무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완전한 북방의 지배자가 된, 흉노의 엄청난 자신감을 드러낸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이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당시 묵특은 1차 정벌 이후 서진한 월지를 다시 정벌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서역 도시국가들을 장악하여 실크로드를 흉노의 지배 하에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 편지를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묵특이 죽어 이 작업은 그의 아들, 노상 선우가 완성하게 된다. 월지 역사에서 "왕의 머리가 술잔이 되는"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각주

  1. 열국연의: 사기 흉노열전에서 인용. 맞춤법 수정, 강조 표시는 필자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