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목

柳寅睦.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202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39년생이며, 경상북도 상주군 중동 우물리 출신이다. 자(字)는 낙삼(樂三), 호(號)는 차산(此山)이다. 그는 좌의정, 판중추부사를 역임한 류후조(柳厚祚)의 조카로, 성균관에 재학 중이던 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주도 하에 서원 철폐가 단행되자 이만기(李晩起)·이인화(李寅華)·이승제(李承濟) 등과 함께 남인 출신 유생을 중심으로 권당(捲堂: 유생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거나 성균관을 비워두고 나가는 행위)을 주도했다가 성균관에서 쫓겨났다.[1]

이후 합천군수를 역임한 뒤 관직에서 물러나 경북 지례군에서 학문을 닦던 그는 1895년 8월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11월 단발령이 선포되자, 이듬해인 1896년 초 의병을 일으키자는 통문을 돌리고 농민병을 모집한 후, 여중룡(呂中龍)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이기찬(李起璨) 의병장의 부대와 연합하여 군문집례(軍門執禮)에 추대되었다. 이후 관군에게 체포되었다가 사면령에 의해 석방되었고, 1900년 8월 6일 지례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류인목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대구지방보훈처는 2020년 11월 5일 류인목의 증손녀인 류혜숙 씨에게 건국포장을 전수했다.[2]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