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흐 바웬사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 1943년 9월 29일~ )는 폴란드의 노동 운동가, 정치인으로 폴란드의 제2대 대통령(1990년 ~1995년)이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솔리다르노시치[편집 | 원본 편집]

레흐 바웬사는 1943년 폴란드의 포포보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교육만 받고 1967년 그단스크에 있는 레닌조선소에 전기공으로 취직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좋지 못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어서 바웬사는 1970년 때 그는 반정부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지만 해고됐다.

1980년, 레닌조선소에서 파업 투쟁을 하면서 연대자유노조(폴란드어: Niezależny Samorządny Związek Zawodowy), 통칭 솔리다르노시치를 창시했다. 당시 솔리다르노시치는 좌우 상관 없이 모두 다 파업 투쟁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연대’는 불법화됐고 바웬사를 비롯한 노조 지도부는 체포됐다.[1]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8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입국이 불허될 것을 우려해 부인이 그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참여했다. 소련의 몰락이 가속화하면서 폴란드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정부는 바웬사 측과 협상하게 되었다. 협상에서 '솔리다르노시치’를 포함한 다른 노조들의 법적 지위 회복, 폴란드 의회 구성을 위한 자유로운 의원선거, 대통령직 설치, 경제적 변화조치의 발표 등을 얻어냈다

대통령 집권기[편집 | 원본 편집]

1990년 바웬사는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폴란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바웬사는 폴란드가 유럽 연합, 나토에 가입하도록 추진했다. 이후 폴란드의 경제는 6%의 성장률과 함께 회사의 60%가 민영화되었다. 그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경제 전환으로 인한 과도 경제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이고 정치적 무능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결국 그는 1995년 옛 공산당 출신인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에게 다음 권좌를 내줘야했다.

근황[편집 | 원본 편집]

2000년대에 정계에서 은퇴했다. 심장 질환으로 인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최근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이 사법부 장악 시도를 하자 항구도시 그단스크에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가 했다.[2]

가족[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당시 폴란드를 포함한 옛 공산국가 노조들은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어용노조였다.
  2. ‘폴란드 민주주의 살리자’…다시 그단스크 연단에 선 바웬사, 한겨레, 2017년 07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