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둥반도

소개[편집 | 원본 편집]

랴오둥반도(중국어 간체: 辽东半岛 번체: 遼東半島) 또는 요동반도는 중국의 반도이다. 랴오허강압록강 사이에서 서남방으로 뻗어 있다. 남쪽으로는 황해(서해), 서쪽으로는 보하이해(발해)를 접한다. 랴오둥(요동)이라는 지명은 랴오허강의 동녘에 있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중국랴오닝성에 속하며 북경어로는 랴오닝반도라 한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중국 대륙한반도를 잇는 길목에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사 왕조와 중국사 왕조가 서로 빼앗고 빼앗긴 땅이다. 이곳을 처음으로 소유한 나라는 고조선이다. 그러나 완전히 통치했다고 보기 어렵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그쳤으며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 역시 이곳을 손에 넣긴 했지만 변경이어서 확실하게 통치하지 못하였다.

이후 등장한 고구려가 3-4세기에 걸쳐 중국 왕조들과 격전을 벌이며 처음으로 요동반도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요동반도의 풍부한 철광과 지리적 이점은 고구려가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고구려는 요동성과 요동반도 끝의 비사성을 각각 육상과 해상에서 중국을 방어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당나라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통치하였으나 698년 건국된 발해가 9세기 선왕 시기에 전성기를 맞아 당나라를 밀어내고 요동반도를 차지하였다. 발해가 고구려만큼 통치력을 행사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8세기 무렵 장문휴가 수군을 동원해 산둥반도의 등주(登州)를 공략한 것을 보면 고구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지배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발해 멸망 이후에는 거란족요나라, 여진족금나라, 몽고족원나라 등 북방민족들이 차지하였으며 온전히 중국 한족 왕조의 영향력이 확실하게 뿌리내린 것은 명나라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명나라도 17세기 초반 여진족의 후금(청나라)에게 요동을 빼앗기고 이후 멸망하고 만다.

중국 왕조들이 북경에 도읍하기 시작한 이래 요동반도는 해상에서 북경으로 쳐들어오는 외적을 막는 요충지로 기능하였으나 동양에서 그만한 해상전력을 보유한 나라는 없었기에 그 기능이 발휘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 청이 상대해야 하는 상대는 막강한 영국 해군이었고, 결국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요동반도의 청 요새들은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요충지로서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일본청일전쟁 승리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요동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동양에서 남하정책을 추구하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일본에 압력을 행사하여(삼국간섭) 반환해야 했고, 이후 러시아는 요동반도 끝의 뤼순(현 다롄)을 해군 기지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요동반도에서 러시아 세력을 축출했지만 법적으로 요동반도를 차지하진 않았다. 이후 일본1931년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우며 요동반도를 만주국의 영토로 선언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러시아의 후신인 소련만주 전략공세작전을 발동, 러일전쟁의 패배를 되갚고 요동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했다. 이후 소련군은 뤼순에서 다시 해군 기지를 운용하다 중국에게 일괄적으로 반환했고, 현재에 이른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