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요리

(North)East Asian Cuisine[1]

동북아시아에서 만들어지는 요리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모호한 기준인데, 의외로 지역별 공통분모가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들을 묶어볼 수 있는 포인트는 "준비는 고되지만 조리는 간편하다"[2] 정도.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동아시아 요리의 맛은 대개 "기름지거나 깔끔하거나의 양극화"로 설명된다. 세계 4대 문명의 근원지인 중국은 수질이 그닥 깨끗하지 않았던 환경때문에 기름으로 볶거나 수증기만 추출해 찌거나 하여 최대한 물을 이용하면서도 물에 닿지 않으려는, 이른바 치수적(治水的) 조리기술이 발달했다. 중국인들은 이런 식문화를 동쪽(한국과 일본)으로 전파하였는데, 중국과는 달리 한국일본은 수질이 매우 깨끗했던지라[3]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중국만큼이나 경작지가 넓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재료를 생(生)으로 먹거나 물로 늘려서 먹는 국(汁 혹은 湯) 문화가 발달했다. 그리고 중국은 인접국인 인도 및 동남아와의 교역을 통해(몰론 중국 본토에서도 비교적 많이 생산되었다) 산초, 팔각, 후추 등의 오향(五香)같은 향신료 사용이 자유로웠던 반면,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한국, 일본에서는 쓰기가 어려워 재료 본연의 맛에서 조합을 찾아야 했었던 배경 또한 양극화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우는 북아시아 지방에서 내려온 민족[4]이기에 중국과는 별도로 취급되는 화식문화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적(炙, 훗날 너비아니→불고기 테크 혹은 →불판(솥뚜껑)삼겹살 테크를 탄다)이라든가 일본의 이로리(囲炉裏)[5]도 두 나라가 완전히 중국문화의 하위에만 있지 않았다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동아시아의 별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몽골사람들은 애초부터 중국과는 별 연관이 없는 유제품 및 육식 전문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동아시아 식문화에 또다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종교로, 영향력 순으로 불교, 도교, 유교를 꼽을 수 있다. 불교의 기본교리인 불살(不殺)에서 비롯한 채식주의일본 요리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침[6]과 동시에 한국 요리에도 사찰 음식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 중국에 뿌리를 둔 도교는 음양&오행사상을 퍼트려 음식에도 음(陰, 차가운 성질)과 양(陽, 뜨거운 성질) 및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관계를 만들어 조합의 규칙을 만들어냈고, 궁중음식이나 고급 정찬 등에는 오감(五感)이라 하여 오색(五色), 오향(五香), 오미(五味)[7]를 갖춘 식탁을 꾸미도록 유도했다. 오촉(觸)과 오음(音)이 없는뎁쇼유교사상은 도덕적 교리 개념을 만들어 불교의 불살주의 외에 채식을 왜 해야하는 지에 대해 설명함으로서 야채 요리가 발달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아시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바로 발효된 맛이다. 중국 요리에서 소스라 하면 십중팔구가 온갖 재료를 발효 "장"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고, 이런 소스를 한국과 일본에서도 심심하면 조미료처럼 쓰여지고 있어 중요한 입지에 있다. 그리고 한국 요리에서 발효 식품이 빠지는 순간 대규모 멘붕이 찾아올 것이며 (가장 흔한 김치부터가 발효식품이다), 일본 요리에서도 발효 식품이 빠지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음식이 거의 없다시피해져 말 그대로 생식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인지도[편집 | 원본 편집]

한중일에서의 동아시아 요리[편집 | 원본 편집]

한중일 각국에서 "동아시아 요리"하면 한식, 중식, 일식의 강력한 삼파전이 형성된다. 다만 각국에서 바라본 삼국의 요리는 자국이 자국요리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소 다른면이 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왠지 모르게 국가 이미지와 음식의 이미지가 정비례하고 있다는 점.

중국 요리의 경우는 주로 중국에서 건너간 화교에 의해 새롭게 로컬라이징 되어 뿌리깊게 전파되다보니 아예 본토 음식과 별개이면서도 똑같게 보는 애매모호한 입장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짜장면과 짬뽕(라면) 및 탕수육, 일본에서는 볶음밥과 라멘(짬뽕) 및 스부타[8]가 대표적인 아이콘. 양국 모두 출출할 때 가볍게 먹을 싸구려 음식의 인상이 강하다. 최근에 차이나타운의 영역이 다시금 확장되면서 본토 중국 음식이 여러차례 소개되고는 있지만 극히 일부 메뉴를 제외하곤 익숙치 않은 향 때문에 고역이라며 여전히 기피하고 있는 실태이다.

일본 요리의 경우는 초창기엔 중국과 한국 모두 먹을 게 못된다라는 인상이 강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회[9]는 당연하고 생야채를 먹는다는 개념이 매우 비위생적이고 야만스러운 문화[10]라 거부감이 강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상류층과 서민층의 간극이 매우 커서, 상류층 사이에선 '화식'이라 부르며 매우 고급스러운 문화의 일종으로서 소비한 반면[11], 서민층에선 신토불이로 대변하는 국산품 소비운동, 그리고 조선통신사와 같은 예를 들어가며 문화적 우월성 + 반일의식이 역사 교육을 통해 각인된 탓에 그 미개한(?)것들의 것이 뭐가 그리 좋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엄청난 노력끝에 스시와 사시미를 아이콘으로 내세워 구미지역에서의 고급화에 성공하면서 트렌드가 바뀌어 단번에 가치가 상승했고, 이를 지켜본 한국[12]과 중국이 서서히 문화개방을 통해 편승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한국은 1995년경 문화개방때 처음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이때 대량 유입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개되어 관심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지금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일본 요리를 가장 잘 빠삭하게 파헤치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200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니 바로 뒤 후발주자에 속한다.

한국 요리는 일본 요리나 중국 요리와는 달리, 중국과 일본 각국에서 전파된 방향이 서로 다소 다르다. 중국의 경우는 자기네 소수민족인 조선족 요리의 일부로서 취급되었고[13], 일본의 경우는 재일교포들의 음식으로 소개되어 야키니쿠나 호르몬야키와 같은 육식문화의 발을 좀 더 넓히는데 공헌한 정도가 전부였다. 어느쪽이던 상대적으로 열세에 위치해 있어 한국 음식을 메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흔치 않았고, 특히 중국과의 관계는 정치적인 문제로 소원해서 더욱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신 대만과의 관계가 좋았지만, 대만 자체도 자기네 음식문화가 화려해서 그다지 눈에 띄진 않았다) 계속 묻혀갈까 싶었는데 이런 판도를 단번에 뒤집은 드라마가 있었으니 그것이 《대장금》이다. 《대장금》을 필두로 요리세계 한류 개념을 한국 정부가 활용하기 시작했고, 중일 양국에서도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한국 음식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등의 성업이 이뤄지며 본격적으로 인지도가 생겼다.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는 기름진 요리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2020년대 무렵부터 한국 대중문화 컨텐츠의 성공 사례와 함께 관심도가 높아지긴 하였으나, 중국과 일본에서의 한식 포지션은 그리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 외, 대만/홍콩 요리의 경우는 중국 요리의 지역적 개념으로서 포함되는 실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몽골 요리는 여전히 동북아 요리대열에 끼지 못하고 왕따(?)당하는 중이다.

영미권에서의 동아시아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전파된 순서대로라면 중국 요리 → 일본 요리 → 한국 요리 순이다. 화교의 인구빨로 밀어붙인 차이나타운을 통해 미국식 중화요리를 탄생시켰고, 처음으로 영미권에서의 "아시아 음식 (Asian Food)"의 개념을 소개시켰다. 하지만 미국식 중화요리도 고기 킬러인 미국인들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본토 중국 요리와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어버렸고, 용어도 더 이상 아시아라고 하지 않고 중국 음식(Chinese Food)로 굳혀져 기름지고 살찌는 음식의 대명사[14]가 되었다. 제발 남탓 좀 하지말고 그냥 작작 좀 쳐먹으라고

일본 요리는 먼저 언급했듯, 야만스러운 음식이라 하여 거부감이 강했지만 일본 정부의 홍보로 고급화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 성공한 지역은 비교적 아시아인에게 장벽이 낮은 서부권(e.g.; 캘리포니아주). 하지만 사시미와 스시만으로 열심히 밀다보니 그냥 쌀에 간장과 생선으로 만들면 그냥 죄다 일본 음식인 것으로 치부되는 선입견을 낳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한계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게,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식재료(특히, 해초류)나 촉감(특히, 미끌미끌한 식감)이 영미권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 중국 음식이 "동아시아"의 상징에서 멀어진 이상, 일본 음식이 동아시아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요리는 마이클 잭슨의 비빔밥 예찬론[15]과 더불어 한류 작전으로 미는 정부 덕에 최근에야 소개되었다. 대체적으로 맵고 새콤한 인상이 강한 편인데, 때문에 일본 요리 혹은 동남아시아 요리로 잘못 분류하는 사례도 흔하다.

유럽권에서의 동아시아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전파 순서는 영미권과 같으나, 대체적으로 일본 요리의 인지도가 더욱 높은 편이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가 있고, 국가로서 프랑스의 요리 이미지 파급력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의외로 유럽에도 "중국집"이 있는데 기본적으론 홀만 운영하나 어떤 점포는 전단지까지 돌려가며 배달도 해주는 걸로 보아 명불허전 중국집임을 인증하고 있다. 대개 가장 잘 나가는 메뉴는 볶음밥과 잡채인데 각각 파스타와 메인요리 정도의 입지에 있다. 다만 이 "중국집"은 중화 요리에 가까운 것으로 본토 중국 요리와는 또 거리감이 있고, 아예 동아시아 요리라는 인식과는 결별한지 오래이다. 다만 아시안 스타일이라는 인식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유럽권에서 중국 요리 인상은 거의 중국냄비(웍, Wok)에 강한불로 볶아만든 기름진 음식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중국 요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 보다는 차라리 웍요리라고 소개해야 할 정도로 변형이 가해졌다. 스페인의 어떤 식당을 예로 들면 중국식 소스 말고도 취향따라 데리야키, 땅콩삼발, 동남아식 어장소스에 고추장소스(!) 등으로 바꿔 넣는 건 기본이고 재료까지 양송이, 아티초크, 아스파라거스와 같은 서양채소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완성품을 보면 그닥 중국음식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국 요리는 아직 단품으로 흥행한 사례가 없어서 그런지 다소 비싼 레스토랑 음식이라는 인상만 있는 듯 하다. 간혹 유럽 현지에서 한국 식당이 눈에 띌때 유심히 보면 이해가 되는 게, 가격대가 라멘집이나 웍집 보다는 센 편이다.[16] 파독 광부 및 간호사에 의해 독일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흔히 선전하는 것 정도로 그렇게 눈에 띄진 않는다.[17]

구분[편집 | 원본 편집]

중국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중국 요리는 지역별로 무궁무진한 조리법이 있다고 하나 주로 한족(漢族)의 음식을 지칭하며, 화식(火食) 아닌걸 찾아 보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외 나머지 소수민족의 음식들은 특징이 다른 경우가 많고, 이것들을 과연 중국 요리의 범주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알기 쉬운 예로 조선족만 봐도 소수민족이긴 하지만 조선족이 먹는 음식이 중국 요리인 것은 아니지 않던가) 대부분의 물이 깨끗하지 않다보니 물을 끓여서 마시거나 차로 우려 마시는 문화가 예로부터 있었고, 이게 지금까지 이어져 심지어는 주스까지도[18] 적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지방특색을 2개(남중국, 북중국 - 쌀 문화권과 밀(국수/만두 및 빵[19]) 문화권) 혹은 4개(북경, 상해, 광동, 사천)로 나누어 구분하나, 요리 자체 특징으로 구분시 아무리 큼지막하게 구분해도 8개 미만으로 줄이기는 어렵다. 8대 구분법상으로 나누면 산둥(베이징), 장수(상하이), 절강(저장), 광동(광둥), 호남(후난), 사천(쓰촨), 복건(푸젠), 안휘(안후이).

한국 요리[편집 | 원본 편집]

한국 요리는 기본적으로 몽골쪽의 육식문화와 중국쪽의 화식주방문화, 그리고 토속적으로 뿌리내린 농경문화가 뒤섞인 퓨전요리에서 기인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싸우더라도 자기네 집안 식구들끼리 엎치락 뒤치락 싸워왔고, 일본도 전국시대와 같은 짧은 난세를 제외하면 정말 오랫동안 침략당하지 않으며 살아온 덕에 결론적으로 나름 자국 문화의 이미지를 구축한 반면, 한국은 지리적인 요인 때문에 몽골이나 중국에게도 침략당하고 일본에게도 침략당하는 수난의 역사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요리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유난히 매운맛을 좋아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 매운맛의 정의가 임진왜란을 전후로 서로 의미가 다른데, 왜란 전에는 산초의 얼얼한 매운맛[20], 왜란 후에는 고추의 화끈한 매운맛이 대세를 이끌었다. 이처럼 매운맛에 환장한 이유는 발효음식의 잡내를 없애주는데 더없이 좋은 특효였기 때문.

한국 음식은 기본적으로 농산물을 주축으로 하는 야채와 곡물, 그리고 생선을 활용한 음식이 많았다. 특히 민물생선으로 끓인 보드라운 매운탕의 인기는 청나라 가신들도 인정할 정도로 가히 대중적이었다고. 육류의 경우는 워낙 귀한 재료[21]라 축제음식으로 쓰여지다보니 발전 속도가 다소 더디었던 편이다. 하지만 반대로 버리면 아까워서 그런지 부속물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챙겨먹는 요리법이 발달했으니 나름 윈윈이라고 해야할까.

한국 요리만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면 융합과 조화의 미를 매우 중시한 점이다. 중국요리는 주로 음양오행에 따른 상성관계를 중시하고, 일본요리는 숨김맛으로 본맛을 끌어주는 주종관계에 중점을 둔 반면, 한국요리는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깔아둔 혼합의 미학에 매우 심취해 있다. 흔히 쌈 혹은 비빔밥(골동반)문화로 비유하곤 한다.

일본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요리는 아주아주아주 긴 해안선을 따라 양쪽에 자리한 바다를 통해 잡아올린 바닷물고기를 바탕으로 하는 음식이 발달했다. 덤으로 그 양쪽에 자리한 바다는 모두 어종이 풍부한 영양가 높은 바다로서, 온갖 다양한 어패류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산물이 발달하지 않고서야 못배길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요리의 유별난 특징은 조미료로 간장에 상당히 의지하고 있다는 점과 해조류를 정말 많이 먹는다는 점. 특히 조미료로서 간장은 향이 옅으면서도 감칠맛으로 재료의 숨은 맛을 이끌어내는 점 때문에 자연스레 일본인들을 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게끔 이끄는데 큰 공헌을 했다.

오랫동안 간접적이나마 불교와 신토의 조합으로 육고기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어육과 채소요리가 극단적으로 발달했다. 또한 풍부한 수량(水量)의 환경덕에 자연스레 국물을 자주 접하면서 매 끼니에 국물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박혀버리는 수준에 달했다. 한국도 국물 없이는 못산다는 인식이 있기는 하나, 가끔가다 국물이 메인메뉴가 되기도 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언제나 "밥과 국"이라는 세트개념으로 따라갔다. 이게 진화하여 면과 국물, 덮밥과 국물, 떡과 국물등으로 줄곧 따라다녔다. (참고로 여기서 국의 개념은 일본어 "汁"의 개념으로, 우린물(=茶)도 汁에 포함된다)

몽골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여러모로 인지도상 왕따를 많이 당하는 몽골 요리는 지금까지 서술한 동아시아 요리의 특성 거의 대부분을 무시하고 있다. 원래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보다는 중앙아시아에 가깝고 바다가 접해있지도 않고, 경작지가 넓은 것도 아니며, 중국의 영향은 커녕 되려 오랫동안 으르렁거렸던 사이고[22], 종교가 전파된 것도 아니라서 음양오행설 따위가 여기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넓은 초원을 기반으로 하고 유목민으로 이루어진 전투종족 몽골인들의 식문화는 단위에너지가 높은 동물성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유제품을 많이 먹는 것도 여타 동아시아 국가와는 완전히 차별된 점. 정확히는 육류 요리보다는 유제품 요리가 훨씬 더 발달하였다. (실제로, 전통적인 몽골 요리에서 고기를 이용한 요리는 의외로 종류가 많지 않지만 유제품은 종류만 수십 가지나 된다)

티베트 요리[편집 | 원본 편집]

정치적 이유로 중국의 지방요리로 치부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중국 스타일과는 다른 면이 다소 많다. 오히려 가깝기론 인도 요리나 네팔 요리 및 부탄 요리에 가깝다. (되레 과거 티베트 요리가 부탄 및 네팔에게 영향을 준 케이스인데 본가가 사장되었을 뿐이다)

각주

  1. 그냥 Asian Cuisine 이라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East"를 붙이지 않으면 동남아시아 요리를 먼저 떠올린다.
  2. 실제로 음식을 잘 못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특징이 양념 넣는 순서를 잘 못 맞춘다. 라면도 못 끓일 레벨이 아닌 이상은
  3. 두 나라 모두 수원(水原)지가 비교적 젊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숲과 산이 많아서 그렇다. 반면 중국은 늙은 땅인데다 중앙부쯤이 황토고원로 이루어져 있어서 흙탕물인 것.
  4. 일단은 설이지만 매우 강력한 설이므로 그냥 언급한다.
  5. 일본 전통가옥에서 볼 수 있는 난방용을 겸한 주방.
  6. 무려 천년을 넘게나 온 국민에게 채식을 강요시켰다.
  7. 오미(다섯가지 맛.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의 경우는 민간에도 중요시되었다.
  8. 이것도 탕수육의 일종인데 만드는 법은 한국 것과 살짝 다르다.
  9. 몰론 회(膾)라는 음식 자체는 중국 요리를 기원으로 하고 있지만 중세시기에 들어서 완전히 사장되었다.
  10. 홍군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 기행문으로 작성한 《레드 로드》(손호철 저)라는 책에서 서술한 바에 의하면, "기름진 중국 음식에 질려버려 그냥 시장에서 야채를 사다가 씻어만 달라고 하고 우적우적 씹어먹으니 사람들이 야만인 보듯 쳐다보았다."라고 한다. 참고로 그곳이 시골지방이라서 그런거지, 대도시는 이미 익숙해져서 별로 그렇지도 않다고.
  11. 이런 현상은 일제시대 무렵부터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12. 특히 한국에서의 일식문화 확장은 미국에서의 일식 정착 성공의 영향이 매우 컸다.
  13. 이 포지션은 2020년대인 현재도 다르지 않으며, 아예 자국 문화 편입 시도까지 확장되었다.
  14. 게임 심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피자보다 중국음식을 먹었을때 훨씬 더 빨리 살이 찐다.
  15.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요리는 불고기가 아니라 비빔밥이다.
  16. 정식 일본 식당이나 중국식 식당도 만만찮은 가격을 자랑하니 사실 별 차이 없는거지만, 아직 한국 요리를 다루는 캐주얼 식당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잡힌 것 같다.
  17. 이 부분은 수정자가 바이에른주에 들렀을 때의 개인 경험담이다.
  18. 외부세계가 잘 닿지 않는 내륙에서는 냉장고에 음료를 보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애초에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한 것도 이유지만 차게 먹으면 배 탈난다고 믿는 사람들의 심리가 더 크다고. 일례로 중국 내륙의 소도시에 자리한 밥집에서 시켜먹은 맥주조차 뜨끈하게 데워서 내왔다고 한다(..)
  19. 타 문화권의 빵식과는 다소 다른 면모가 있다. 처음 중국에 빵이 들어왔을땐 초창기 모습 그대로 딱딱한 빵이라 주로 국물에 말아먹었다고(!!). 나중엔 찐빵이나 튀김빵으로 발전했지만.
  20. 후추를 더 선호했지만, 전량 수입품이었는지라 양반 중에서도 아주 높으신 분 정도가 아니고서야 손도 못댔을 정도라고 한다.
  21. 소는 농삿일을 해줘야 하고, 돼지는 남은 음식물을 먹여가며 키워야 했으며, 닭은 계란을 낳아야 하니 노계나 수탉이 아니고서야 쉽사리 잡질 못했다. 그래서 가 만만했나보다
  22. 그래도 약간 영향을 받은 것은 있다. 예를 들면 차(茶)와 만두. 반대로 원나라 시절 몽골 요리가 중국 요리에 준 영향은 의외로 상당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