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ck of 100 dollar bills.jpg

화폐(貨幣)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거나 결정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하는 물건이다. 달리 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의 원이나 미국의 달러 등, 현대 사회에서 지칭하는 화폐는 유통화폐, 즉 통화(通貨)와 거의 동일한 의미다.

돈의 어원[편집 | 원본 편집]

영어로 돈을 뜻하는 머니(money)는 경고라는 뜻의 라틴어 『모네레(MONERE)』에서 왔다. 고대 로마의 신 중 여성과 혼인, 출산의 신인 유노는 화폐도 관장한다고 여겨졌는데, 과거에는 집안 경제가 집안일의 일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에 갈리아인이 로마를 공격할 때, 신성한 기러기떼가 신전 주변에서 적의 공격을 경고했다고 한다. 이 이후 유노 여신은 이름 뒤에 모네레의 명사형 『모네타(MONETA)』를 붙여 '유노 모네타'라고 불렸고, 이 모네타에서 현대 영어 어휘인 머니, 그리고 돈을 만드는 곳(주조소)를 뜻하는 민트(mint)가 나왔다.

실제로 유노 여신의 신전에서는 데나리온이라는 은화가 주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어원으로 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의 모네다(moneda), 독일어의 마르크(mark)와 문제(munze)가 있다.

유통화폐, 줄여서 통화(通貨)라는 뜻의 커런시(currency)는 주조소에서 동전이 쏟아져나오는 모습에 어원이 있는데, '흘러 넘치다', '진행되다'라는 뜻의 라틴어 쿠레레(CURREERE)에서 커런시라는 단어가 나왔다.

한국어 단어 '돈'에 대한 어원은 불분명하나, '돌고 돈다' 혹은 '동그랗다'고 하여 돈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대체로 자연화폐에서 시작하여 귀금속이나 다른 대체화폐와 같은 것을 사용하다가 귀금속을 기반으로 한 태환제(금본위제, 은본위제 등)에서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는 신용화폐까지 발달을 하게 된다. 물론 해당 구조가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일정 단계를 건너뛰거나 거꾸로 돌아갔다가 다시 넘어가는 등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종류[편집 | 원본 편집]

자연 화폐 (현물 화폐)[편집 | 원본 편집]

화폐의 존재의의이자 알파형이라 할 수 있어 정화(正貨)의 범주에 들어간다. 크게 실용성이냐 상징성이냐를 두고 현물 화폐와 (귀)금속 화폐[1]로 분류되는데 후자는 아래 금속 화폐의 범주로 넘어갔다.

옛날 옛날 먼 옛날, 초기 물물교환은 말 그대로 바꾸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집에 남아도는 잉여 재산을 직접 가져가서 흥정을 통해 필요한 물건과 교환해 사용하였다. 예로 오늘 사냥한 고기가 너무 많아서 다 먹기 어려울 때, 다른 집에서 수확한 과일과 바꿔먹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 기준이 없고 상대방이 뭘 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양을 교환해도 어떤 때는 풍족한, 어떤 때는 빈곤해지니 이에 대해 명확히 정의할 필요성이 생겼다.

인류가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대부분의 가정에는 , 과 같은 곡물이 기본 재산이자 기본 식량이 되었다. 즉, 고기는 못 먹더라도 이나 은 먹어야 한다는 개념이 이때 생겨났다. 때문에 자연스레 곡물(식량)=목숨이 되어 잉여재산의 베이스가 되고, 자연 화폐의 기본형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개념은 전혀 다르지 않아 현대 사회에서도 불환통화(=현금)이 믿을 수 없는 환경이 되면[2] 일단 식량부터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식량을 줄곧 화폐로 사용하는 것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일단 식량은 모두 유기물이다보니 유통기한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거래에 필요한 만큼을 일일히 나르기에는 그 무게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한 사람이 하루에 먹는 쌀만 해도 최소가 200g이다. 4인 식구가 한 달 동안 먹는 최소 식량만 무려 24kg에 달한다. 그런데 농경사회는 일반적으로 대가족이고, 보통 쌀은 1년마다 채워지니 결론은…). 그래서 사람들은 이하의 두 가지 대안을 생각해냈는데, 그 결과가 현대까지 주로 쓰이는 두 가지의 통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 거래한 양의 곡물 증서를 써주고 나중에 필요한 만큼 창고에서 꺼내가는 것을 보증한다. 일단 일일히 무겁게 들고다닐 필요도 없고, 노동력 거래(=일급, 월급 등)때도 일일히 분배할 필요없이 문자 기록만으로 효율적 관리가 가능했다. 종이가 일찍이 만들어진 동아시아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이것이 훗날 어음수표테크 트리를 타고 현재의 지폐가 된다.
  2. 거래햔 양을 금속으로 치환한 무게를 넘겨준다. 예를 들어 100근(약 50kg)의 쌀을 거래했다면 이를 1근(약 500g)의 (銅)이나 1돈(약 3.75g)의 은이나 금으로 교환하는 방식. 자주 쪼개야 하는 거래에는 동으로 수령하여 필요할 때 다시 쪼개서 주면 되고, 고액 거래에는 더 가벼운 고급 화폐로 바꿔두어 보관하면 편리하며, 무엇보다 금속 자체로도 쓸모가 있어서 증서보다는 안심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고대 및 중세 국가는 이러한 칭량 화폐를 주력으로 사용하였고, 이것이 훗날 동전이 된다.

금속 화폐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일부에선 현물 화폐가 활약하기도 했는데 대개가 사치품 성격을 띄는 현물이었다. 한국에서는 베(포전 말고 비단)가 그러하였고, 중세 중국과 몽골 등지에서는 찻잎(茶)이,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후추육두구가 그런 역할을 하였다. 현대에도 비슷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한때 북한개성공단을 장악하던 초코파이는 이 경우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금속 화폐[편집 | 원본 편집]

금속 화폐는 현물 화폐의 발전형으로 현대에서 말하는 화폐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고전적 형태이다. 금속 화폐를 사용하는 시점에서 물물교환의 시대가 끝나고 시장경제의 개념이 생긴다. 요점은 아무리봐도 전혀 실용적이지 않고 가성비도 좋을리가 없는데 그게 사회의 암묵적인 룰을 통해 (그리고 이후에 정치적으로 가치가 인정되어) 화폐로서의 기능을 하는 점이다.

금속 화폐와는 소재만 다르고 비슷한 역할을 한 화폐도 많은데 미크로네시아의 돌 화폐, 수많은 원시국가에서 애용한 조가비 화폐, 그 외에 도기화 폐나 나뭇잎 화폐 등도 일단 개념은 금속 화폐와 동일하다.[3] 굳이 금속 화폐를 예로 든 것은 인류가 청동기 시대~철기 시대를 거치며 구대륙(유라시아) 내 금속 생산량이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금속 화폐는 훼손 및 감멸이 적고, 품질과 생산량이 안정되어 있어 지금까지 남은 유물의 숫자 또한 기타 화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금속 화폐의 초기형태는 앞서 설명한 대로 칭량화폐(=무게를 달아서 거래함)였다. 금속의 괴(塊)를 들고 다니며 필요한 만큼 잘라서 거래하고, 작은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큰 괴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매번 자르는 것도 은근히 일이고 해서 아예 미리 무게에 맞춰 만들기 시작하는데 (대략 1돈, 1세켈, 1데나리우스와 같이) 이것이 발전하여 도량화폐(度量~, 미리 정의한 무게의 화폐)가 되었다. 도량형 화폐는 일단 가격이 눈에 분명히 띄면서도 금속화폐의 장점을 모두 수용하고 있어 거래하기도 편하고, 재산을 관리하는데 매우 편리하여 근현대 화폐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범 지구적으로 사용하는 주류화폐가 되었다.

같은 무게라도 금속의 종류에 따라 시세가 달랐다. 아무리 금속 화폐가 관리하기 편해도 대책없이 많아지면 무거워지는 것은 똑같다. 예로 쌀을 근근히 팔아 마차를 산다고 하면…[4] 그래서 동화(銅貨), 은화, 금화의 개념이 생겼으며, 비슷한 은화라도 메인 발행처 사정에 따라 은과 기타 금속의 합금 비율을 달리하여 가치를 조정하기도 하였다.[5] 지금으로 말하면 여러 외화를 모두 유통화로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몰론 일반인이 이를 모두 외우고 다니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므로 이것만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인 환전상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인 금속 화폐도 극복하기 어려운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일단 현물인 금속을 무게에 따라 가치를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생산량(출하량)에 따라 가치가 바뀐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굳이 합금을 통화로 사용한 것"이 이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일종의 위조방지책이라 볼 수 있다.) 현대로 말하자면 어딘가에 조폐기계가 잠들어있다가 갑자기 깨어나 막 찍어낼지도 모르는 공포를 안고 있다는 것. 먼 옛날 고대 로마 제국에서도 이 현상을 늘 경계하였었고, 17세기에 남아메리카를 싸그리 정복하여 은과 금을 대량으로 가져온 에스파냐 왕국이 결국 그 일로 유럽에 귀금속 가치폭락(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적으로 망해버린 역사적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스페인(에스파냐)은 마찬가지로 남미에서 채굴한 가짜 은을 이용해 모조 은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우려하여 바닷속에 던져버렸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대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서 전설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많은 현대 해녀 해저탐험가들은 그 플래티넘을 찾아다니고 있다.

금속 화폐의 개념은 현대에도 이어져 동전으로 진화하였다. 서비스업과 금융업이 매우 중요한 산업이 된 현대 시장에서는 현지실물거래가 많이 줄어들고 거래 통화량 또한 과거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큰 값인 경우가 많아서 수표와 지폐의 위상이 크게 상승하였기 때문에 동전은 단위의 기본이면서 지폐(대용량화폐)의 하위 형태, 그러니까 푼돈의 이미지가 박히게 된다.

신용 화폐(신용통화)[편집 | 원본 편집]

시장경제의 개념이 생기면서 사회에는 시장(Market)이 들어섰다. 시장이 생기면서 규모의 경제가 탄생하고, 처음에는 마을 단위로 군소하게 퍼져있었지만, 점차 이들을 묶어내는 중앙시장이나 대형시장의 개념이 나타나면서 연합체 상회(Guild, 길드, 협회)등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장소에, 한꺼번에 '동전들'이 대량으로 모여들면서 취급이나 관리가 어려워진 것이다. 때문에 환전상이나 전당포 업주들은 아예 창고에 자리를 깔고 동전들을 보관해주는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은행(Bank)의 시작이었다.

은행은 고객으로부터 맡긴 물건을 보증하는 의미에서 보관증을 써서 넘겨주었다. 언제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기본으로 보장하고(예금 기능), 훗날에는 같은 협회 소속이라면 굳이 같은 지점이 아니더라도 인출을 허용하는 서비스(송금 기능)까지 부여하거나 아예 맡긴게 없어도 잠시 빌려주는 업무(대출 기능)까지 개발해내었다. 이런 서비스들은 무겁고 불편하고 귀찮게 동전을 들고다녀야 할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행여나 있을지 모를 도난 및 강탈의 문제에서도 해방된 격인지라 사람들은 점차 직접 집에 쌓아놓고 들고 다니기보다는 은행을 이용하게 되었다. 은행은 그렇게 하나의 사업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한 단계 더 꼼수를 썼는데, 어차피 은행(Bank)에서 발급한 증서(Note)만 있으면 언제라도 현물을 꺼내쓸 수 있으니, 아예 증서 자체를 동전처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은행 또한 여기서 착안해 일일히 수기 증서(백지수표)를 쓰는 대신에 대량으로 만들어둔 증서를 여러장 건네주는 방식(유가증권)으로 발행을 대신하게 되었다. 여러장을 발급하더라도 종이가 기본적으로 동전보다는 가볍고, 보관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해도 칭량식 처럼 동일화시키지 않아도 무방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임의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닌지라 갑작스런 팽창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다.[6] 이것이 근현대 통화체계의 근간이 되는 은행권(Banknote)이며, 신용화폐의 기본형이 되었다.

대체 화폐[편집 | 원본 편집]

기존 유통화폐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다른 화폐로 대체하기도 하며, 이를 대체 화폐라 한다. 채권, 외국화폐나 임시화폐(ex : 놋겔트(Notgeld)등의 불환화폐, 귀금속과 같은 정화(및 태환화폐) 등될 수도 있으며, 해당 사회 내에서 암묵적으로 동의가 되는 실용적인 물품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위에서 언급한 자연화폐가 사용되기도 한다.)

화폐유통을 강제로 금지시키는 환경에서도 대체 화폐가 유통되는 사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일단 국가규모로 보면 달러화 국가(Dollarization)가 그러하고, 가까이 북한 또한 북한 원의 신용도가 바닥이라 미국 달러중화인민공화국 위안을 신용도가 높은 무역 화폐로 쓰고 있다. 교도소 등지에서도 대개 화폐 사용을 금지시키는데, 이때 주로 담배, 초콜릿 등이 화폐로 거래되기도 한다. 전쟁 중에 군인들이 봉급으로 받는 군표(군부발행통화) 대신 앞서 언급한 현물 화폐가 더 선호한 예시도 많다.

가상세계에서도 이 대체 화폐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게임 《디아블로 2》의 조던링이 일종의 거래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이다.

전자 화폐[편집 | 원본 편집]

근대사회의 진입이 산업시설이라면, 현대사회의 진입은 우월한 교통 및 통신(암호)기술이 함께하였다. 특히 전기신호(전파)의 발명은 지구를 통째로 한 권역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적 의미로 시장규모의 폭발적인 팽창을 야기시켰는데, 기존의 상회수준을 넘어서, 국제거래 및 국제투자 등이 일어나며 종이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도달하였다.

처음에는 고액수표로 해결보려 했지만, 수표는 일개 은행의 어음일 뿐,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간 거래에는 고액통화가 필수이었다. 1930년대 발행 미국의 1만 달러권, 2000년대까지 발행한 말레이/싱가포르 1천/1만 달러권, 지금도 발행 중인 스위스 1천 프랑권 등은 이런 수요로 인해 탄생한 권종이다.

그런데 그 부작용으로 고액권을 사설로 보관하는 초고소득층, 지하 경제용으로 쓰기위해 수집된 검은 돈(불법자금) 문제, 성공만 하면 대박 터지는 위조범들의 노오력이 집중되어, 까딱하면 통화 조절에 실패할 위험성도 떠안게 된다. 일반인들도 불환화폐의 등장 이후로는 고액거래시 불안한 마음으로 고액수표나 뭉칫돈을 들고 다녀야만 했고, 도난이나 강도의 위험에도 시달려야 했다.

전자화폐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탄생했으며, 널리 보급이 된 이후로는 수표 축소, 고액권 폐지, 동전 혹은 지폐의 역할 축소 등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야기거리[편집 | 원본 편집]

  • 10진법을 사용한다는 전제하에서, 대부분의 화폐단위는 1, 5 체계 혹은 1, 2[7], 5체계를 띄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즉, 대부분 액면으로 사용하는 숫자는 1, 2, 5, 0으로만 이뤄져 있다는 뜻이다.
    • 드물게 ¼(25), ½(50), 1(100) 체계를 갖추는 경우도 있으며, ¼와 2를 혼합한 체계도 존재한다. 이 경우엔 분수단위 액면이나, 2½[8]라던가 12½[9]같은 대분수 단위가 나타나기도 한다.
    • 간혹 3단위를 사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개 상징적인 의미이거나 1과 5 사이의 숫자 '3'에만 한정한다. 그 이외의 숫자는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지만, 버마 짯처럼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 과거 영국에서는 비(非)10진법 체계를 사용했는데, 사실상 60진법을 둘로 쪼개 놓은 12진법과 20진법을 혼용했기 때문에 3, 4, 6의 단위도 자주 이용되었다. 즉, 1, 2, 3, 4, 5, 6, 10, 12, 20 체계인 셈.

외부 참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일반 금속 화폐는 본래 현물 화폐의 범주에 있었지만 높은 보존성과 칭량(稱量)의 용이함 때문에 귀금속과 묶어서 취급한다.
  2. 전쟁이 발발한다던가, 갑작스런 자연재해(지진, 태풍, 수해, 화산폭발 등)가 덮친다던가, 그 외 나라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하는 상황이 온다던가 등.
  3. 한국사나 동양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직물 화폐(=포전(布錢), 일명 '비단 O포'.)도 이쪽에 속한다. 단순히 유통거래 및 세금납부를 위한 천은 내구성이 무조건 강해야 해서 옷으로 지어 입기 힘든 뻣뻣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진짜 비단 같은 고급품은 상품(商品)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물물교환이라 봐야 한다.
  4. 동전으로 자동차 뽑는 무모함과 같다.
  5. 어차피 귀금속의 가치는 사치품의 최종소비층인 귀족들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화폐라는 것 자체가 사회의 암묵적인 룰(=강제통용력)에서 시작한 것이다.
  6. 다만 은행의 제멋대로 부도나 은행측이 폭주하는 경우에는 얄짤 없었던 것이 단점이다. 이를 보완한(견제를 위한) 장치가 중앙은행법과 같은 법률의 제정이었다.
  7. 20진법의 관습이 10진법으로 옮겨진 사례이다.
  8. 인도네시아 루피아,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길더 등. 과거 지배층으로 있던 네덜란드가 ¼단위를 사용한 국가이다.
  9.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동전 등. 매우 드문 경우인 ⅛단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