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의 포스터
사사오입 개헌으로 얼룩진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에서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이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아직도 대통령 욕심을 못 버린 이승만은 박수칠 때 떠나는 아름다운 승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승만은 82세(한국 나이)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또다시 나가기 위해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던 헌법을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즉, 이승만)에 한해 연임 제한을 철폐시켜 버렸다. 한국전쟁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던 당시, 국민들은 여전히 이승만에 대해 높은 지지율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사오입 개헌은 안팎으로 많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국회 내에서 반(反) 이승만 세력이 결집하여 민주당이라는 거대 야당을 출범시켰으며, 신익희를 차기 대통령으로 밀어주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대한민국 선거사에 길이 남을 구호를 외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 구호는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 정신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던 유권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보수세력들은 이 구호에 대항하여 갈아봤자 더못산다라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2파전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던 선거전은 한 순간 돌변하게 된다. 신익희 후보가 전남 유세를 위해 기차로 이동하던 중 심장마비로 인해 급사한 것. 이로 인해서 신익희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졸지에 갈 곳 잃은 떠돌이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럼 신익희 말고 무소속의 조봉암 후보를 지지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조봉암 후보는 좌파(라고 쓰고 빨갱이라고 읽는) 경력 때문에 민주당마저도 "이승만, 김일성보다도 위험한 사람"이라고 경계하던 인물인지라, 섣불리 조봉암을 지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결국…

선거 결과[편집 | 원본 편집]

이승만이 70%의 압도적인 득표율 속에 당선되었다. 조봉암이 신익희의 표 일부를 흡수하였으나, 당선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그 많던 신익희의 표는 어디로 갔을까? 정답은 바로 무효표이다. 신익희의 지지자들은 투표장에는 가되, 일부러 무효표를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이 선거의 총 투표율은 무려 94.4%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지만, 전체 투표수의 20.5%(185만여 표)는 무효표로 나타났다.


후보자 정당 득표수 %
이승만 자유당 5,046,437 69.98
 
조봉암 무소속 2,163,808 30.01
 
신익희[1] 민주당 0 0.00
 
무효표 1,856,818
총 투표수 9,067,063 100
등록된 투표자수/투표율 9,606,870 94.4

지역별 득표율[편집 | 원본 편집]

지역 / 시 · 도
이승만
자유당
조봉암
무소속
득표수 % 득표수 %
수도권 서울특별시 205,253 63.27% 119,129 36.72%
경기도 607,757 77.13% 180,150 22.86%
강원도 644,693 90.80% 65,270 9.19%
충청도 충청북도 353,201 86.09% 57,026 13.90%
충청남도 530,531 77.05% 157,973 22.94%
호남
(전라도)
전라북도 424,674 60.17% 281,068 39.82%
전라남도 741,623 72.11% 286,787 27.88%
영남
(경상도)
경상북도 621,530 55.32% 501,917 44.67%
경상남도 830,492 62.30% 502,507 37.69%
제주도 86,683 87.85% 11,981 12.14%
지역별 최다 득표자는 진한색으로,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한 후보는 연한색으로 배경을 처리하였다.


제3대대선득표수.jpg

제2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이 모든 지역에서 상대후보를 압도하였지만, 상대 후보인 조봉암의 선전도 두드러졌다. 당시 진보 성향이 강했던 영남호남 지역에서 이승만의 득표율이 다소 낮게 나왔다. 특히 일제 강점기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 성향이 강했던 대구를 포함한 경북에서 이승만의 득표율은 55%로 전국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다. 반대로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는 이승만의 득표율이 9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래도 지역감정은 없던 시절이어서, 지역구도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선거 이후[편집 | 원본 편집]

이승만이 3선 연임에 성공, 대한민국의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승만은 이후 4년 동안 대통령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30%에 달하는 조봉암의 득표율과 신익희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쏟아낸 무효표는 국민들을 호구로 알고 있던 이승만과 자유당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선거에서 나름 선전을 거둔 조봉암은 선거 직후 진보당을 창당하고 정치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각주

  1. 선거 유세 기간 중 사망
헌정체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대선
(년도)
제1대
(1948)
제2대
(1952)
제3대
(1956)
3·15(1960)
제4대(1960)
제5대
(1963)
제6대
(1976)
제7대
(1971)
제8대
(1972)
제9대
(1978)
제10대
(1979)
당선자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헌정체제 제4공화국 제5공화국 제6공화국
대선
(년도)
제11대
(1980)
제12대
(1981)
제13대
(1987)
제14대
(1992)
제15대
(1997)
제16대
(2002)
제17대
(2007)
제18대
(2012)
제19대
(2017)
제20대
(2022)
당선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취소선은 무효 선거, 탄핵, 기울임체는 간접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