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

대한민국의 역사는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 대한민국 수립 이전[편집]

한국사의 시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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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북한

1.1 일제 강점기[편집]

1910년까지 존속했던 조선 왕조(혹은 대한제국)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종결된 이후 일본제국조선총독부의 지배 아래 통치받던 한반도는 당연히 여러 반일성 개인/단체의 활동들이 전개되었고 그중에선 이승만, 김구 등 여러 뜻있는 인사들이 상하이에서 함께 하여 아예 건국을 미리 준비하던 경우도 있었는데 이 모임에서 국명이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성된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인물난 및 재정난 등으로 여러 위기에 봉착했으나, 나름대로 독립군들을 지원하고 전용 의용군을 창설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었다.

1.2 미 군정기[편집]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군의 히로시마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와 관동군의 붕괴, 만주 상실로 인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일본제국이 결국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한반도는 자유의 땅이 되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일본과 맞서 싸운 소련, 미국이 일본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통치하게 되었고 이 중 소련은 지리상으로 가까운 한반도 북부를 소련군 소속 항일인사였던 김일성을 대표로 통치하였고 반대로 미국은 지리상으로 (일본과) 가까운 한반도 남부를 통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과 소련군정으로 양분되어 통치되면 분단이 일어날까 걱정했던 여운형을 주축으로 한 조선인민공화국이 급히 발표되는 등 건국 시도가 수차례 있어왔지만, 미국은 한반도 내 모든 독립적인 정부수립을 위한 조직이나 정당들의 활동을 무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들은 미군정에 소속되어 활동할 것을 분명히 하였다. 미군정에 의해서 결국 조선인민공화국이나 상하이 임시정부 모두 부정되었고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통일 단독 정부수립을 위하여 제1·2 차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타협점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로 사회주의자본주의 우위의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결렬. 더군다나 동아일보에서 오보를 내는 바람에 사람들의 의견이 결정적으로 나뉘어버렸다. 이로 인해 미국유엔에 한반도 정부수립문제를 상정해버렸고 유엔에서는 남북총선거를 통해 정부수립을 하자고 결의하였다. 그러나 1948년 소련은 남한의 인구가 더 많았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판단하였고 결의안을 거부, 38선 이북으로 유엔선거관리위원회의 방북을 차단하였다. 결국 남한만의 단독선거(5·10 총선거)를 하고 이를 통해서 수립된 정부가 제헌국회와 이승만을 제1대 대통령으로 하는 제1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 정부 성립 이후[편집]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을 기준으로 특정 사유로 헌법이 수정되는 개헌이 일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제O공화국 이라는 현대사 구분을 적용하고 있다.

2.1 제1공화국[편집]

  • 1949년 8월 15일 ~ 1960년 6월 15일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을 정부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수립되어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신탁통치 하에서 강대국의 알력으로 찢어진 북한과 신경전을 벌였으며, 한편으로는 미 군정의 잔여 조직을 인수하면서 농지 재분배, 반민특위 등의 일제강점기 정리를 진행했다.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였으며, 이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경상남도 정도만 간신히 사수하게 된다. 서방세계의 군사 원조로 휴전선까지 밀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 군정에서 이어받은 최소한의 기반도 파괴되고 전형적인 빈민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편 초대 대통령 덕택에 여당이 된 자유당이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게 되며, 이에 분노한 민중이 선거 당일부터 거센 시위를 시작했다. 이내 의병과 경찰의 교전까지 벌어지면서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나(4·19 혁명), 사회의 불안함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어서 4월 26일 이승만의 자진 하야로 제1공화국이 끝났다.

2.2 제2공화국[편집]

  • 1960년 6월 15일 ~ 1963년 12월 17일

4.19 혁명 두달만에 새로운 헌법을 통해 탄생한 제2공화국은 윤보선을 대통령, 장면을 국무총리로 하는 의회내각제였다. 혁명의 성공으로 시민사회가 성취감에 부풀어 시민들이 직접 제1공화국 잔재 정리에 나섰다. 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의 내부 갈등과, 환율 약세 등으로 국가가 병들어가 지식인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는 계기가 된다.

2.3 제3공화국[편집]

  • 1963년 12월 17일 ~ 1972년 12월 26일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독재를 향한 물밑 작업을 지속했다. 제5대 대통령 선거로 박정희가 취임함에 따라 제3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빛나는 경제발전의 시기이면서 인혁당 사건, 10월 유신 등으로 대표되는 암흑의 시기이기도 했다. 진짜 임흑은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2.4 제4공화국[편집]

  • 1972년 12월 27일 ~ 1981년 2월 24일

1972년 10월 27일, 제3공화국 말기에 국무회의에서 발의한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를 통과함에 따라 박정희 1인체제로 돌아가는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이전까지는 무늬만큼은 민주주의 모양을 냈지만 유신헌법 통과 이후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이 선출됨에 따라 거리낌이 없었다. 사회는 급속히 군사화되었으며 시민운동은 탄압되었다.

권력에 취했던 박정희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사망했다(10.26 사건). 새로운 대통령으로 최규하가 취임했으나 계엄령을 틈타 이듬해 5·17 쿠데타를 통해 또 다시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에 반발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참혹하게 진압당했다.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은 유신헌법을 십분 활용해 대통령에 취임하고, 대통령선거인단제를 골자로 하는 제8차 헌법개정을 통해 제5공화국을 출범했다.

2.5 제5공화국[편집]

2.6 제6공화국[편집]

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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