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각호텔 화재

대연각호텔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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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당시
사건 정보
날짜 1971년 12월 25일 오전 9시 50분
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인근 대연각호텔
인명피해 사망 : 163명, 부상 : 63명
재산피해 대연각호텔 빌딩 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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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신문기사

대연각호텔 화재는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많은 투숙객들이 머물던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한 참사이다. 당시 화재에 대비하지 못한 건물 내장제와 부족한 소방시설 등이 맞물린 사고.

사고 과정[편집 | 원본 편집]

화재는 오전 9시 50분경 1층 커피숍 주방 안에 세워 둔 프로판 가스통이 폭발[1], 2미터쯤 떨어져 있던 가스레인지에 인화되면서 발생하였다. 불은 바닥의 나일론 카펫과 건물 내부의 목조시설물에 번지면서 삽시간에 위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화재가 발생한지 1시간 30분이 지난 11시 20분경, 불은 맨 꼭대기층인 21층까지 옮겨 붙어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문제점[편집 | 원본 편집]

당시 이런 대형 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체계가 갖춰지지 않아서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졌다. 호텔에 설치되었던 화재경보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스프링클러와 같은 자동화된 초기진화장비의 미비로 화재의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호텔 내장제도 화재에 취약한 목재를 사용하였고, 화재에 대비한 방화구역이나 대피계획도 부실하였다. 화재가 발생한 1층 로비의 가연성 내장재가 타면서 계단을 통하여 3층과 4층으로 번져나갔으며, 냉난방 덕트를 통하여 건물 최상층인 스카이 라운지로 확대되었다. 최상층과 저층부에서 화염이 발생한 상태에서 중간층에 있던 사람들의 피해가 많았으며, 옥상 출입구가 잠겨 있어 대피하지 못한 23명이 옥상 출입구 부근에서 희생되었다. 당시 객실 출입문도 목재로 제작되어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의견이 있으며, 이 사고 이후 공동거주시설의 출입문[2]은 철문으로 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화재신고를 접수한 소방서에서는 가용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투입시켰으나, 당시 대연각호텔은 21층 높이의 고층빌딩으로 서울시내에서도 이만큼 높은 빌딩이 흔치 않았으므로 고층빌딩에 대한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런 고층빌딩 화재진압에 사용되는 중요한 장비인 고가 사다리차의 높이가 32m에 불과하여 호텔 7층 높이까지만 도달할 수 있었고, 그 위쪽으로는 사실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다못한 당국은 대통령 전용 헬기와 주한미군에서 빌린 헬기 등 주변에서 동원가능한 모든 헬리콥터를 끌어와 생존자 구조에 나섰으나 화재로 인한 상승기류 및 유독가스 등으로 헬기의 접근마저 어려워 구조작업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결국 화재진압은 소방관들이 진입가능한 7층 정도까지만 제한적으로 이뤄졌고, 불길은 10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잡혔다.

피해[편집 | 원본 편집]

화재 현장에 방문한 박정희

대연각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사망 163명, 부상 6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재산피해는 71년 당시 화폐가치로 8억3천8백 만원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상술한 문제점으로 인해 사망자가 크게 발생하였고, 특히 7층 이상에 고립된 사람들은 유독가스와 열기에 견디다못해 맨몸으로 건물밖으로 뛰어 내려 이로인한 추락사가 38명이나 발생했다. 일부 투숙객들은 침대 매트리스와 이불로 몸을 감싸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또한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어간 투숙객들이 많아서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 오전에는 제대로된 화재경보조차 없어서 영문도 모르고 객실에 머물던 많은 사람들이 화재에 휩쓸렸다.

2차 화재[편집 | 원본 편집]

대연각호텔은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으나 서울시 도심에 위치한 입지조건이 워낙 뛰어났으므로, 고려증권그룹이 인수하여 전면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하였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소유주인 고려증권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고, 2010년 2월 27일 오후 1시 56분에는 빌딩 옥상에 설치된 에어컨 냉각탑 교체작업 도중 화재가 발생하여 소방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스럽게도 화재는 20분만에 진압되었으나 커다란 인명피해로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긴 그 빌딩에서 발생한 화재라는 점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빌딩은 현재 고려대연각타워로 유지되고 있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당시 호텔 투숙객 중에는 주한 대만 대사관의 외교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11층에 머물던 외교관은 화재가 발생하자 욕실에 들어가 물을 받아놓고 몸을 적시며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렸고 그렇게 10시간을 버틴끝에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
  •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충격적인 일이었고, 이 사고를 모티브로 고층빌딩의 화재를 묘사한 영화 작품이 제작되는 모티브가 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대표적이 사례가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대형 재난영화인 타워링. 하지만 타워링은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인지라 대연각호텔 화재가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억지스러운 면이 존재한다.
  • 화재가 발생하자 지근거리에 본사[3]가 위치했던 문화방송이 가장 먼저 화재를 생중계하였다. 그리고 화재소식을 접한 세계의 유력 언론들의 지사가 있던 홍콩에서 긴급히 달려와 화재 현장을 취재하였다. 여담으로 화재가 10시간 가까이 지속되었기에 외신들이 홍콩에서 입국하여 현장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화재는 진행중이었다.

각주

  1. 가스통에서 유출된 가스가 주변 조리시설 등의 불꽃에 인화되어 화재가 발생했다는 의견이 있다.
  2. 대표적으로 아파트 현관문을 생각하면 된다.
  3. 당시 문화방송의 본사는 화재 현장에서 가까운 중구 정동에 위치했다. 1982년 문화방송이 여의도로 이전한 이후에는 경향신문의 사옥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