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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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
당성.jpg
건축물 정보
주소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
대지면적 211,595 m2
문화재 정보
종목 사적 제217호
지정일 1971년 4월 15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위치한 삼국시대(6세기 이후)에 지어진 산성으로 구봉산 정상부(165m)에 자리한 테뫼식 산성인 1차성과 포곡식 산성인 2차성이 결합한 총 둘레 1200여m의 복합형 산성이다. 이 당성은 당항성이라고도 하며 삼국시대 신라가 중국(당나라)과 교류하는 중요 거점이기도 하였다. 본래 백제의 영역에 속하던 곳이었으나 고구려가 점령해 일대에 당성군이라는 지명을 붙였고 이후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던 당시 이 지역을 함께 점령해 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지조건[편집 | 원본 편집]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인천이나 한강 하구가 아닌 지점인 이 당성이 어떤 이유로 한반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로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선박의 성능을 감안하면 장거리 항해는 어떻게든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으며 이런 조건에서 당시 당나라 가장 동쪽 지점인 산둥반도와 신라가 지배하던 한반도 중부지역을 찾으면 산둥반도 정동(正東)방향에 위치한 현재의 당성 부근이 연결되게 되어있다. 실제 현재 산둥반도의 주요 항구 중 한곳인 석도항(시다오)과 당성 인근 항만인 전곡항이나 궁평항까지의 직선거리는 38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로 제법 가까운 편이다. 또한 이 두 지점 사이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가 아닌 대부도,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 굴업도, 백야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약 100km가량 되는 구간에 산재해 있어 당시 원양항해가 어려웠던 섬들이 이들 섬을 징검다리 삼아서 항해하는 항로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당성이 주요 교통로가 될 수 있는 큰 요인이 되었다.

이후 고려가 들어서고 주요 항로가 벽란도 방향으로 옮겨지면서 대중국 교역로의 역할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준동한 왜구가 강화도 인근으로 접근하는 것을 감시할 수 있는 감제고지로의 역할이 부각되어 인근에 수군기지가 설치되고 조선시대에는 바로 옆의 고지에 봉수대가 들어서는 등 꽤 오랜 기간동안 국방상으로 중요한 지점으로 그대로 기능을 하였었다.

구조[편집 | 원본 편집]

1차성[편집 | 원본 편집]

구봉산 정상부에 테뫼식으로 설치한 산성으로 360여m의 성둘레를 가진다. 기본적으로 토축을 한 보루에 가까운 규모로 2차성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그 흔적이 거의 사라졌으나 일부는 2차성 서쪽의 망해루가 설치되면서 2차성에 흡수되었다.

2차성[편집 | 원본 편집]

현재 석성으로 복원한 구역으로 1,200m의 성둘레를 가지는 포곡식 산성이다. 기존 테뫼식 산성의 좁은 영역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확장한 영역으로 성내에는 지금도 샘이 나는 수구와 꽤 넓은 평탄지대를 포함한 구역이다. 정상부 부분은 1차성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1차성의 모습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3차성[편집 | 원본 편집]

가장 후대에 지어진 성으로 성둘레는 230여미터의 외성과 옹성 역할을 한 곳이다. 본성(2차성)의 서남쪽에 이어진 외성으로 성의 서남쪽의 제일 높은 곳에서 한층 낮아진 평탄 대지를 주머니 모양으로 둘러서 본성의 남문을 보호하는 옹성처람 축조한 성으로 현재는 흔적만 겨우 남아있다. 이 외성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낮아지는 곳에도 보다 작은 제2의 외성을 만들어 남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는 최소한 2개의 벽을 통과하게 설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1971년 사적 지정 당시 이 성이 당항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견해도 꽤 있었으나 이후 발굴조사가 진행되며 쏟아져 나온 유물을 분석한 결과 그런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2017년의 4차 발굴조사에서 1천여점 이상의 유물과 우구가 쏟아져 나왔었다. 이전까지 발굴한 3회의 조사에서도 1천여점의 유물이 나와 이 당성이 상당히 오랜 기간 중요하게 사용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 이 성은 수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및 복원이 진행중이다. 일단 발굴조사구역 외 탐방은 가능하지만 하도 많은 부분을 파내서 조사하는 덕분에 꽤 많은 구간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 현재 이 성이 위치한 지역은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로 변하여서 항구가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과거에는 상안리 바로 앞 계곡부까지가 바다와 강이 만나는 삼각강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물때에 맞추어 성에 꽤 가까운 곳까지 선박이 들어올 수 있었던 곳이다.
  • 남양홍씨 문중에서는 선시조인 홍천하(洪天河)가 선덕여왕에 의해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진 것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곳이 이 당성 인근이라는 설이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