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가극단

宝塚歌劇団

일본의 유서 깊은 극단.

유래[편집 | 원본 편집]

1913년 7월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서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에 의하여 창단된, 무려 110년의 역사를 지닌 극단이다. 한큐 전철의 창업자인 고바야시는 전철의 이용객을 늘리기 위하여 종점인 다카라즈카역 인근에 일본 최초의 실내수영장을 만들었는데, 굉장히 획기적인 명소였지만 당시 기술로는 수영장 물을 데울 수 없었으므로 겨울이면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서 겨울철에 수영장 대신 손님을 확보할 수단으로 예쁘고 가무에 능한 소녀들을 모집하여 노래와 공연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다카라즈카가극단의 기원이다.

극단의 표어는 고바야시가 손수 정한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이다. 생전에 고바야시는 다카라즈카가극단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구성[편집 | 원본 편집]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와 도쿄도 치요다구에 전용극장을 가지고 있다. 다카라즈카시에 있는 다카라즈카대극장은 2,550석이고, 도쿄다카라즈카극장은 2,069석이다. 두 전용극장 외에 도쿄 신주쿠구의 일본청년관과 오사카부의 우메다(梅田) 예술극장에서도 자주 공연한다.

배우들 외에도 프로듀서, 각본가, 연출가, 음악 담당, 무대미술 담당, 의상 담당, 각종 장신구 담당, 영업 담당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의상, 소도구, 장신구들까지 대부분 극단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데,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다고 한다.

배우[편집 | 원본 편집]

다카라즈카가극단은 여배우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배우들은 모두 6개의 조로 나뉘어 있는데, 명칭은 각각 하나구미(花組), 츠키구미(月組), 유키구미(雪組), 호시구미(星組), 소라구미(宙組), 센카(專科)이다. 앞선 5개의 조는 , , , , 하늘을 상징하며, 센카는 특별 베테랑 그룹이다.

여배우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만큼, 남자 역할도 모두 여배우들이 남장(男裝)을 하고서 연기한다. 남자 역할을 맡는 배우를 ‘오토코야쿠(男役)’, 여자 역할을 맡는 배우를 ‘무스메야쿠(娘役)’라고 부른다. 오토코야쿠와 무스메야쿠를 가르는 기준은 주로 ‘키’이며, 평소 연습할 때는 머리모양으로 구분한다. 오토코야쿠는 커트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무스메야쿠는 스튜어디스처럼 쪽머리를 한다.

다카라즈카가극단의 배우들을 ‘다카라지엔느(タカラジェンヌ)’라고 부르는데, ‘다카라즈카’와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여성’을 뜻하는 ‘파리지엔느(Parisienne)’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만들어낸 용어이다. 줄여서 ‘젠느’라고도 부른다. 젠느들은 전원 미혼 여성이며, 결혼하려면 퇴단해야 한다. 고바야시가 처음 극단을 만들 때부터 있었던 규칙으로, 여성들은 결혼하면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없었으므로, 젠느로서의 활동에만 전념하려면 독신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퇴단한 단원들은 연예계에 진출하여 가수배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도 한다. 다카라즈카가극단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에, 퇴단 이후로도 젠느들은 대개 새로운 분야에서도 승승장구하곤 한다. 젠느들 중에는 부유층ㆍ상류층의 딸들이 많아, 비슷한 수준의 남성과 결혼도 잘 한다고.

젠느들은 본명 대신 예명을 사용하며, 신비주의를 위해 젠느들의 본명과 출생연도 등의 자세한 정보들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치를 ‘스미레(菫) 코드’라고 부른다.

다카라즈카음악학교[편집 | 원본 편집]

다카라즈카음악학교의 합격자 발표. 재학생들이 학교 벽에 합격자 명단을 게시한다.

다카라즈카음악학교의 입학식. 교가를 제창하는 학생들.

다카라즈카가극단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2년제 다카라즈카음악학교(TMS)[1]를 졸업해야 한다. 음악학교 지원 자격은 ‘중학교 3학년(만 14~15세)부터 만 18세까지의 여자’이며, 매년 40명씩만 선발한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므로, 음악학교에 입학할 당시 반드시 중학교 졸업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카라즈카가극단이 워낙 인기가 많기 때문에 일본 전국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음악학교의 입학시험 경쟁률은 ‘간토(關東)의 도쿄대학, 간사이(關西)의 다카라즈카음악학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열하다. 간사이 지방에서는 다카라즈카음악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이 뉴스에까지 보도될 정도이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진학하는 학생도 있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고, 몇 차례씩 재도전[2]하는 학생도 있다.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외모와 재능도 중요하지만 특히 키가 크면 유리한데, 오토코야쿠를 맡을 정도로 훤칠한 장신의 여자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장신 기록은 츠키구미 소속의 오오쿠스 테라(大楠てら)인데, 무려 180cm나 된다. 어지간한 남자보다도 훨씬 큰 키이기 때문에, 테라는 오토코야쿠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본래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2003년부터 교육과정을 개정, 희망자에 한하여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입학 후에는 대부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각종 노래, 연기, 일본무용, 발레, 현대무용 등을 철저히 배운다. 이렇게 예과 1년과 본과 1년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하면 다카라즈카가극단에 정식으로 입단하여 단원이 된다. 단원들은 한큐 전철의 직원으로서 월급을 받으며, 단원 외의 타 직업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겸업할 수 없다. 입단 7년차까지는 ‘하급생’, 8년차부터는 ‘상급생’이라고 한다.

다카라즈카음악학교는 규율과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몹시 엄격하다. 예과생들은 매일 아침마다 연습실을 깨끗이 청소하여 선배에게 검사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립자 고바야시 이치조의 묘소에 참배하고 주변을 정돈하는 것도 학생들의 역할이다.

예과생들은 화려한 옷차림[3]과 개인적인 화장을 해서는 안 되고, 교내외에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면 안 되고, 명품을 가지고 다니면 안 되며, 매사에 본과생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등등의 까다로운 불문율이 있다. 예과생이 본과생에게 학교생활에 관한 질문들을 적어서 제출하는 관습이 있는데, 질문을 자세하게 많이 작성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많은 예과생들이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고 밤늦게까지 잠도 못 자며 질문지에 매달린다고. 선배가 글씨체, 내용, 분량, 종이의 품질 등을 지적하며 다시 써오라고 하면, 후배는 선배가 만족할 때까지 군말없이 다시 써가야 한다. 질문지뿐 아니라, 예과생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 쓰는 반성문도 마찬가지다.

또한 예과생들이 한큐 전철을 이용할 때는, 선생님들과 선배들이 쉽게 발견하여 지도할 수 있도록 맨 뒤칸에 탑승해야 한다. 그리고 전철에서 내려서는 곧장 승강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철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두 손을 무릎에 대고 허리를 45도 각도로 숙인 자세, 일명 ‘최경례(最敬禮)’ 자세로 전철을 향하여 인사해야 한다. 전철 안에 선생님이나 선배가 단 1명이라도 탑승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후배는 선배를 깍듯이 모셔야 하고, 선배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며, 선배의 지시와 명령에 절대로 거역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입단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덕분에 ‘다카라즈카 출신이라면 예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교가[편집 | 원본 편집]

一、
白雲なびく六甲の
松のみどりにいや映えて
山秀麗の生を享く我等は乙女学舎は
歌劇の国の宝塚
歌劇の国の宝塚

二、
希望は清し武庫の川
流れはつきじ永遠に
水玲瓏の粋をくむ
我等は乙女ひと筋に
歌劇の国の宝塚
歌劇の国の宝塚

사건사고[편집 | 원본 편집]

다카라즈카가극단과 음악학교의 엄격한 분위기와 상하관계는 내부의 질서와 기강이 철저히 확립되도록 해주는 오랜 전통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안전사고도 발생했다.

음악학교 이지메 사건[편집 | 원본 편집]

2008년 4월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입학한 어느 학생(이하 A양, 당시 만 16세)이, 학교에서 가혹한 이지메를 당했다. A양은 도호쿠(東北)[4] 지역의 이와테현 출신으로, 2008년도 신입생들 중에서 유일한 도호쿠 출신이었다. 다카라즈카 팬들이 모이는 사이트에 게시된 2008년도 신입생들의 단체사진에 “A양이 제일 예쁘다”는 댓글들이 많았고, 이를 계기로 A양에 대한 따돌림과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가해자들은 A양을 감금하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고, 그녀의 물건을 빼앗거나 버렸으며, 세탁기 사용도 제한했다. 그러다가 A양에게 도둑 누명까지 씌워, A양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로 인해 A양은 학교와 법정 다툼까지 벌였고 법정에서는 퇴학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학교에서는 그녀의 복학을 거부했다. 결국 다시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법원에서는 ‘A양의 다카라즈카음악학교 졸업 자격을 인정하되, 다카라즈카가극단에 입단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예체능(음악, 무용) 전공이라는 특성상, 다카라즈카음악학교와 가극단에는 부유층과 상류층 가문의 딸들이 많다. 그녀들과 그녀들의 집안은 학교를 좌지우지할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배경이 없는 약자였던 A양은 학교와 가해자들을 상대로 이기지 못했고, 신체적ㆍ정신적ㆍ시간적ㆍ금전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했으며, 학교와 소송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웃들로부터도 손가락질을 당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A양은, 2013년에 AV(포르노) 배우로 데뷔했다고 한다.

2018년 6월에도 예과생 1명(이하 B양)이 엄격한 분위기와 위계질서에 힘들어하다가 학교 기숙사의 발코니에서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B양은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다카라즈카가극단 배우의 자살 사건[편집 | 원본 편집]

2023년 9월 30일, 다카라즈카가극단 소라구미 소속의 배우였던 아리아 키이(有愛きい)[5]가 투신자살했다. 그녀는 1998년 4월 22일생으로, 사망 당시 25세였으며 입단 7년차 배우였다.

키이는 공연 준비와 연습 등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며 잠은 2~3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여기에 7년차였던 그녀는 하급생 중에서 가장 높은 연차로서 후배들에 대한 지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이 문제로 선배들로부터 질책과 괴롭힘도 당해오고 있었다. 아마이로 미네리(天彩峰里)[6]는 고데기로 키이의 머리를 정리해주는 척하다가, 키이의 이마를 지져 화상을 입혔다. 이 사건은 <슈켄분슌(週刊文春)>이라는 잡지에도 보도되었으나, 극단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며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키이는 내부고발자로 의심되어,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더욱 불편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했다.

이외에 마츠카제 아키라(松風輝), 세리카 토아(芹香斗亞)[7], 하나비시 리즈(花菱りず), 유우키 시온(優希しおん)[8] 등의 선배들이 키이를 괴롭혔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실력 부족을 모두 키이의 탓으로 돌렸고, 키이에게 “정신 상태가 잘못되었다”거나 “후배들을 똑바로 가르쳐라”라며 꾸짖었다.

결국 키이는 견뎌내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족들은 기자회견을 하며 키이가 겪은 피해들을 폭로했다. 배우의 자살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에 다카라즈카가극단과 팬들은 무척 놀랐고, 사건 직후 한동안 공연들이 취소되기도 했다. 또한 키이의 쌍둥이 여동생 이치카 아오(一禾あお)도 다카라즈카가극단 배우[9]인데,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고 2024년 2월까지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도 다카라즈카가극단은 “이지메는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키이가 당한 괴롭힘에 대해서도 “개인의 사생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극단 이지메 사건[편집 | 원본 편집]

소라구미의 오토코야쿠인 마카제 스즈호(眞風涼帆)[10]가, 상대역(무스메야쿠)인 후배 호시카제 마도카(星風まどか)[11]를 괴롭힌 사건.

스즈호는 소라구미의 톱스타로 대장의 위치에 있었으며, 175cm라는 그녀의 키는 오토코야쿠들 중에서도 제일 큰 편이어서 큰 키와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도 있었다. 또한 스즈호는 마도카보다 10살이나 연상이었기에, 마도카로서는 더욱 어려운 선배였다. 스즈호는 마도카의 면전에서 거친 말투로 외모와 몸매를 지적하며 꾸짖었고, 마도카에게 오랜 시간 정좌(正坐)한 채로 대기하게 시키는 등의 체벌도 했다. 스즈호의 괴롭힘에 마도카는 소라구미에서 하나구미로 조를 옮겼으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23년 다카라즈카가극단에서 퇴단했다.

그런데 스즈호는 마도카만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라구미로 옮기기 전 호시구미에서도 ‘폭군’으로 통했고, 소라구미로 옮겨 톱스타가 된 후로도 극단에 이지메와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해놓은 문제적 인물이었다. 때문에 후배들은 스즈호를 무척 두려워하고 어려워했다. 전술한 자살사건의 가해자들 역시, 사실은 스즈호로부터 가혹한 지도를 받아온 피해자들이었다. 스즈호가 자신들을 지도했던 방식을, 후배인 키이에게 똑같이 행했던 것이다. 그간의 이러한 행적들이 재조명되면서, 스즈호 역시 2023년 다카라즈카가극단에서 퇴단했다.

사망사고[편집 | 원본 편집]

1958년 4월 1일, 공연하던 배우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카츠키 히로미(香月弘美)[12]는 1936년 8월 21일생으로, 하나구미 소속이었으며 당시 21세였다.

히로미는 가나가와현에 있는 가톨릭 미션스쿨인 쇼난(湘南) 시라유리여학원 초등학교중학교를 거쳐 동(同) 학원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중퇴하고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입학했다. 이는 초등학교ㆍ중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마츠시마 미나코(松島三那子)의 영향이었다. 미나코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진학, 다카라즈카가극단의 배우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히로미와 미나코는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서 재회한 후로도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했고, 둘은 함께 공부하며 같은 꿈을 키워나갔다. 두 소녀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다카라즈카가극단에 입단, 배우가 되어 함께 무대에 올랐다. 키가 컸던 미나코는 오토코야쿠, 키가 작았던 히로미는 무스메야쿠였다.

문제의 그날도 두 사람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본래 그날은 히나츠 유리(日夏有里)라는 배우가 공연하는 날이었으나, 유리가 감기몸살로 앓아눕는 바람에 히로미가 유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날 히로미가 입었던 의상은 드레스였는데, 치마 속에는 철사로 만들어진 ‘후프스커트’라는 장치가 있었다. 치마를 부풀려 더욱 풍성하게 보이도록 해주는 장치였다. 반면 오토코야쿠였던 미나코가 입었던 남자 의상은 통이 좁은 바지였다.

미나코와 히로미는 악당의 광선 공격을 받고서 땅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서로 부둥켜안은 두 사람이 서 있던 부분(리프트)이 무대 아래로 내려왔는데, 그만 히로미의 풍성한 드레스 자락이 리프트 가장자리에 끼어버렸다. 후프스커트가 없었다면 옷자락이 찢어지는 정도에서 그쳤겠지만, 치마 아랫부분과 중간의 철사 후프스커트가 철제 허리띠와 연결되어 있었다. 철제 허리띠가 허리를 꽉 조여서, 히로미는 말 그대로 허리가 잘려, 즉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풍성한 드레스 때문에 겉모습만 보아서는 히로미의 참혹한 죽음을 알 수 없었고, 미나코는 다음 장면을 준비하러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알지 못했다.

나중에야 히로미의 죽음을 알게 된 미나코는 실신했으며, 깨어난 후로는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이라고 울부짖으며 미쳐 날뛰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어려서부터의 소중한 친구를 잃은 미나코는, 한동안 PTSD 증상까지 보였다. 사고 이전까지 촉망받는 배우였던 그녀는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1969년 11월에 다카라즈카가극단을 퇴단했다.

히로미의 사망사고는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66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카라즈카가극단 내외부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후 극단에서는 무대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안전장치를 철저히 설치하고, 후프스커트도 철제 대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부러지기 쉬운 대나무 등으로 만든다.

신흥종교와의 관련?[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신흥종교인 창가학회(創價學會)와 관련이 깊다는 설이 있다. 창가학회에서 다카라즈카가극단과 음악학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학생들과 배우들에게 포교도 한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환경에서의 단체생활, 선후배간 엄격한 위계질서와 절대복종, ‘학교와 극단에서의 일을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 때문에, 어린 학생들과 배우들은 가족들조차 모르는 사이 포교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출신 인물[편집 | 원본 편집]

  • 나나미 히로키(七海ひろき): 성우
  • 다이치 마오(大地眞央): 배우
  • 단 레이(檀れい): 배우
  • 마야 미키(眞矢みき): 배우
  • 모리 나나코(森なな子): 성우
  • 센도 카호(仙堂花步): 코미디언
  • 스즈카제 마요(涼風眞世): 배우, 가수, 성우
  • 아마미 유키(天海祐希): 배우, 성우
  • 이치로 마키(一路眞輝): 배우
  • 코야나기 루미코: 가수
  • 쿠로키 히토미(黑木瞳): 배우
  • 하토야마 미유키(鳩山幸): 제93대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의 부인

배우 아이부 사키(相武紗季)의 어머니와 언니가 다카라즈카가극단 출신이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간사이 지방에는 다카라즈카음악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돕는 음악ㆍ연기ㆍ무용학원이 많고, 전직 다카라지엔느들이 강사로 많이 활동한다.
  •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다카라즈카 코도모 아테네’라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다카라즈카음악학교의 시설에서 다카라즈카음악학교의 강사진이 노래와 무용을 가르친다. 여기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다카라즈카음악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고.
  • 나루히토 일왕의 남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왕자에 대해 ‘다카라즈카가극단 배우(이하 C)에게서 태어난 사생아라더라’라는 소문이 있다. ‘C는 후미히토 왕자와 닮았다’며 지지하는 설과, ‘후미히토 왕자가 태어나던 1965년 당시에 C는 극단 활동으로 바빠서 임신출산을 해낼 틈이 없었다’고 반박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이러한 소문들이 있는 와중에 후미히토 왕자 자신도 다카라즈카가극단 배우와 염문설을 뿌렸고, 그러는 와중에도 아내 키코 비와 부부동반으로 다카라즈카가극단 공연을 관람하여 빈축을 샀다.

각주

  1. Takarazuka Music School
  2. 나이 제한 때문에 최대 4회까지만 가능하다.
  3. 검은색, 흰색, 회색 옷만 허용.
  4. 일본 동북부 지역의 6개 현.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이와테현, 야마가타현, 아키타현, 아오모리현을 가리킨다. 일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하여, 개발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들이다.
  5. 본명은 이노우에 나미(井上奈美).
  6. 본명은 아쿠타 쥬리(芥田樹里). 1997년 3월 26일생(27세).
  7. 본명은 야마오키 사야카(山沖彩也花). 1990년 1월 20일생(34세). 어머니도 다카라즈카가극단 출신이다.
  8. 1993년 11월 30일생(30세). 야구선수 키요하라 가즈히로(淸原和博)의 친척이다.
  9. 본명은 이노우에 마미(井上茉美). 1998년 4월 22일생(26세). 유키구미 소속. 쌍둥이이지만 언니의 키는 164cm, 동생은 171cm이다. 때문에 언니는 무스메야쿠, 동생은 오토코야쿠를 맡았다.
  10. 본명은 마츠타니 유리카(松谷諭里華). 1986년 7월 18일생(37세).
  11. 본명은 시자와 카나메(志澤かなめ). 1996년 11월 11일생(27세).
  12. 본명은 오가사와라 히로에(小笠原弘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