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 선우

초기 흉노 선우
묵특 노상 선우 군신 선우

노상 선우(老上 單于, 재위: 기원전 174년~기원전 160년)는 흉노선우다. 본명은 계육이었다고 하며[1] 묵특의 뒤를 이어 흉노의 선우로 즉위하였다. 그는 묵특이 열어놓은 흉노의 전성기를 성공적으로 이어갔으며, 2차 월지 정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나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다. 화친 조약에 따라 한의 공주(진짜 공주는 아니었지만)와 결혼한 첫 흉노 선우이기도 했다.

1 생애[편집]

즉위 직후에는 아버지 묵특이 완성하지 못한 월지 정벌을 다시 실행하여 천산 산맥 부근까지 서진한 월지를 다시 한 번 철저하게 밟아주었다. 이 때 그는 월지의 군주의 목을 베어 그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크~ 취한다. 주모, 머리통 그득하게 한번 따라 주이소~ 이로서 흉노는 실크로드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후 이 교역로는 흉노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한의 공주와 결혼할 때 중항열이라는 환관이 따라왔는데, 이 사람은 흉노에만은 가기 싫다고 빌었음에도 강제로 보내진 사람이었다. 그는 흉노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반드시 한에 해악을 끼칠 것이다!"[2]라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중항열은 흉노에서 노상 선우의 총애를 받으며 한나라에 최대한 망신을 줄 수 있는 방법과 한나라의 군사적 약점들을 조목조목 가르쳤다(...) 그 결과 한문제 14년에는 14만의 흉노군이 장성 이남을 침범한다. 그들은 팽양을 점령하여 회중궁을 불태우고, 감천궁에 이른다. 여기에서 한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더 이상 진군하지는 못했다. 선우는 장성 이남에 한 달간 머물다가 흉노로 돌아갔다고 한다. 한이 10만의 기병을 동원했는데도 흉노를 축출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장성 이북에서는 전과를 올리지 못하여 흉노의 무력의 우위가 다시금 증명되었다. 이후에도 매년 대대적인 약탈과 납치를 자행한다. 결국 기원전 162년 한의 요청으로 한과 흉노 사이에는 다시금 화친 조약이 맺어지게 된다.

기원전 160년 사망하여 그의 아들 군신 선우가 그의 뒤를 잇는다.

2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