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취물

주머니
가운데
가질
물건

낭중취물(囊中取物)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하다는 의미로, 매우 손쉬운 일을 의미한다. 탐낭취물(探囊取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유래[편집 | 원본 편집]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중국 송나라 때의 정치가 겸 문인 구양수가 쓴 역사서 《신오대사》에 기록된 내용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오대는 당나라가 멸망한 서기 907년부터 송나라가 통일하던 서기 960년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후당의 명신이자 문학가인 한희재는 이곡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한희재가 강남의 오로 떠나게 되자 이곡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술김에 한희재가 농담 삼아 강남에서 자신을 재상으로 삼는다면 일거에 중원을 빼앗겠다고 호탕하게 말하자, 이곡은 한술 더 떠서 "만약 중원에서 나를 재상으로 삼는다면 강남을 차지하는 것은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을 것이오."(中國用吾爲相 取江南如探囊取物爾).'

삼국지연의[편집 | 원본 편집]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로,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배하여 유비, 관우, 장비 3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유비는 조조의 숙적인 원소에게 의지하였으나 이 사실을 모르던 관우는 조조군에 포위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태에서 장료의 권유로 마침내 조조에게 투항하게 되었다. 관우는 언제든 유비의 소재를 파악한다면 그 즉시 조조의 곁을 떠나도 좋다는 조건으로 조조에게 잠시 의지했다.

마침내 조조와 원소는 하북을 놓고 관도대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초반 전투에서 원소의 상장인 안량의 군세와 대치하던 조조는 관우를 출진시켜 적의 예봉을 무찌르라 지시하였고, 이에 관우는 홀로 적진을 돌파하여 안량을 찔러 죽이고 그 수급을 취하여 조조에게 바쳤다. 관우의 놀라운 무용에 조조가 감탄하자, 관우는 "제 아우 장비는 백만대군이 몰려와도 적장의 목을 자기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취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조는 주위를 둘러보며 앞으로 혹여나 장비라는 장수와 마주치거든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관우의 일화 외에도, 중후반부 제갈량이 남만 정벌에 돌입하여 만왕 맹획을 사로잡았다 놓아주는 것을 반복하였는데, 주위에서 연유를 묻자 제갈량은 "맹획을 사로잡는 것은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손쉬운 일이므로 그의 마음을 복종시켜 평정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칠종칠금의 고사가 이 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