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비메일

깨비메일은 1996년에 나라비전에서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웹메일 솔루션이자 대한민국 인터넷 초창기의 웹메일 서비스[1]이다.

상세[편집 | 원본 편집]

웹메일 서비스[편집 | 원본 편집]

1995년에 대구대학교전자공학과 학생인 김성훈[2] 씨와 경북대학교의 학생 몇 명이 모여서 인터넷 관련 솔루션 제공회사인 나라비전을 설립한다. 초기에는 홈페이지 제작을 맡기도 하고, 인트라넷 솔루션을 개발해서 판매를 시도하기도 하는 등 수익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 만들어 봤지만 크게 성공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1997년 11월에 '깨비'라는 이름의 포털사이트의 운영을 시작했는데[2] , 이 시도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당시 포털사이트 '깨비'의 기능에는 메타검색엔진, 채팅 서비스, 커뮤니티 서비스, 그리고 '깨비메일'이라는 이름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가 있었다. 깨비메일은 1997년 5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한메일보다 규모 면에서 항상 밀렸지만 그래도 2000년 전후에 들어서는 1999년에 90만 명이었던 회원 수가 1년 만에 200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의 주요 무료 이메일 서비스 중 하나였다.[3] 광고를 낸 적은 없지만, 높은 안정성과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퍼진게 이런 회원 수의 증가를 불러왔다고 한다.[3] 한메일의 회원 수가 1999년에 이미 300만 명 수준이었다는 건 넘어가기로 하자

포털사이트 '깨비'는 2000년 1월에 당시 광고의 힘을 빌어 대한민국의 3대 인터넷 포털 중 하나였던 라이코스코리아가 35억원을 투자해 나라비전과 라이코스코리아가 공동으로 운영하게 된다.[4] [5] 당시 라이코스가 공동운영한 다른 사이트들의 사례를 보면,[6] 깨비를 운영할 때 나라비전은 사이트 관리를 위한 기술적인 부분을, 라이코스코리아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을 담당하는 형식으로 운영하고, 수익은 절반씩 나눠가지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라이코스코리아가 네이트에 인수되기 이전까지 (2002년 12월) 깨비는 '라이코스 네트워크' 아래의 포털사이트로 운영되지만, 2003년부터는 이메일 서비스를 주로 하는 사이트로 다시 바뀐 것으로 추정[4]된다.

라이코스코리아가 실질적인 사이트 운영을 담당하던 시기에 깨비메일은 메일 저장 용량을 10MB에서 5MB로 줄이는 등 무료 이메일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이는 방식으로 회원들을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게 유도하는 작전을 세웠다.[7] 하지만 인터넷 포털들이 무료 서비스를 내세우며 서로 이용자 수를 늘리려고 출혈경쟁까지 감수하던 시기에 이런 전략은 이용자의 지속적인 이탈을 불러왔고, 계속된 유료화 끝에 웹메일 서비스를 완전 유료화한 2004년 1월, 깨비메일의 회원 수는 50만 명에 불과했다.[8] 그래도 소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프리미엄 이메일 서비스'로 완전 유료화 이후로도 10년 넘게 서비스를 유지했지만, 2015년 12월 31일에 웹메일 서비스는 종료될 예정이다.

웹메일 솔루션[편집 | 원본 편집]

나라비전은 무료 웹메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깨비메일'이라는 이름의 웹메일 솔루션도 유료로 판매했는데, 1999년에 SK텔레콤, LG텔레콤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등 당시에도 어느 정도의 기술력은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9] 이 때문에 이메일 서비스를 주로 하는 업체 중에서 돈을 잘 버는 업체로 소개되기도 했다. 나라비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포털에 밀려 주도권을 잃고 있던 무료 웹메일 서비스 분야보다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수익성도 괜찮은 웹메일 솔루션 분야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웹메일 솔루션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거의 공기(...) 취급을 받는 웹메일 서비스 분야와는 다르게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 동양공전, 한국조폐공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거래소 등의 많은 기업과 대학교에서 2015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어, 현재 나라비전의 대표적 주요 분야 중 하나이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깨비메일은 개발자 김성훈이 남는 시간을 쪼개서 만든 것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 1999년 3월에 이메일이 오면 이메일을 받았다는 사실을 삐삐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다.[10]

각주

  1. 초기에는 웹메일 서비스도 제공했지만, 이후 웹메일 서비스보다는 웹메일 솔루션 사업에 더 집중한다.
  2. 대한민국 최초의 키워드 검색엔진 까치네를 개발한 김성훈과 동일인물이다. 김성훈 씨는 나라비전의 창업자이자 개발자 중 한 명이었지만 스스로의 기술적 한계를 느껴 얼마 안가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떠난다.[1]
  3. 1999년 당시 대한민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가 400만 명에서 500만 명 수준이었다.
  4. 웨이백 머신에 라이코스코리아가 운영에 관여할 당시의 주소를 입력하면 2002년까지는 라이코스 네트워크 아래의 포털사이트 '깨비'의 모습이 보이지만, 2003년부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페이지로 리다이렉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