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1896년)

金泰源. 이명은 김일(金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6년 10월 17일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장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충청북도 지방의 임정특파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8월, 그는 김순호(金順浩), 안교일, 신봉균(申鳳均)[1], 신현구, 유득신, 이길용(李吉用) 등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철혈단(鐵血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서 독립 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 9월에는 혈복단(血復團)을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공채를 팔아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광주(廣州) 수원(水源) 오산(烏山) 등지를 돌아다니는 등 활동을 하였다.

1920년 3월에는 혁신단(革新團)이라는 단체와 제휴하여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하기도 하였으며, 4월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과 제휴했다. 5월에는 김상옥, 한훈, 동순(金東淳) 등 20여 명과 함께 암살 행동반을 조직하여,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내한을 기회로 하여 일본 총독을 암살하고 각 관서를 파괴하여 민족의 진의를 전세계에 표명하려다가 비밀이 누설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5년 10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