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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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文相(또는 金文祥).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7년 3월 18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자의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3일 안봉하, 나찬홍, 한청일, 최용식, 홍석정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오전 6시경, 그는 천도교 수안교구에서 나의집 이동욱, 오관옥, 이재관, 백수화, 최석구, 이채룡, 전창오 등과 함께 130여 명의 시위대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헌병 분견대로 행진했다.

시위대는 수안헌병분대 앞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헌병대는 물러가라고 요구했다. 헌병 분대장이 "요구를 들어주겠으니 해산하라"고 권하자 일시 해산하였으나, 오전 11시경 다시 수안헌병분대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헌병대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시위대는 흩어졌다.

이 일로 체포된 김문상은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미결구류일수 중 450일 전시형기(前示刑期)에 산입)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1]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김문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