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몽룡

김몽룡.jpg

金夢龍.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8년 9월 7일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동에서 출생했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2시경, 정규하, 박수환 등이 인솔하는 200명 가량의 시위군중이 영덕군 영해읍 성내동 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자, 그는 이에 가담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병곡경찰주재소를 향해 행진했다. 이때 병곡주재소에서는 영해주재소로부터 시위 소식을 전해듣고 인근 평해의 일본 헌병분견소에 응원을 요청한 뒤,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주재소에 도착하자, 일본 경찰이 나와 제지했다. 이에 김몽룡은 군중의 선두에 서서 투석으로 대항하고 곤봉과 낫 등을 들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의 비품과 서류, 기물 등을 파기한 후 병곡면사무소로 가서 건물을 파괴하였다. 이때 평해에서 응원나온 3명의 일본 헌병과 경찰이 합세하여 총을 겨누며 위협하자, 군중은 그들과 대치하다가 오후 6시경 정규하의 만류에 따라 자진 해산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1], 이에 불복해 공소했으나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2] 이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3년 5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