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萬岩.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0년 3월 18일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애당리에서 출생했다. 이명은 김재헌(金在憲)이다. 그는 1933년경부터 증산교의 일파인 원군교(元君敎)의 후천선경(後天仙境)[1]을 실현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로 이주하여 원군교 교주 홍순문의 지도를 받았다.
홍순문은 현재의 세계정세는 강일순의 교리인 신도조리공사(神道調理公事)에 의해 세계전쟁이 발발하게 되며 가까운 장래에 이 대전은 끝이 날 것이며, 그때 교조 강일순이 현세에 재림하여 하늘과 땅, 사람을 다스리는 '삼황전하'가 되며, 조선은 독립하고, 세계의 선진국이 되며, 증산교 신도들은 강일순의 수제자가 되어 오만년에 걸쳐 육신이 불로불사하는 복록을 얻어 세계 인류를 지도할 자격을 부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만암은 이러한 홍순문의 교리를 신봉하였고, 1941년 5월 26일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에서 홍순옥, 홍순문, 국채준, 전봉균, 박승주, 강재숙 등과 회합하여 무명의 결사를 조직했다. 6월 20일경 유원상의 자택에서 유원상에게 결사의 내용과 목적을 설명하고 결사에 가입시켰으며, 7월 12일 홍순문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기원제를 거행했다.
1941년 8월부터 1942년 3월까지 전라북도 부안군과 정읍군 등지에서 교인들을 결사에 가입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사의 목적이 실현, 성취되도록 심고(心告)와 묵허(默虛)와 기원제, 망량제(魍魎祭)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1942년 6월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1944년 1월 10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미결구류일수 38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2] 출옥 후에도 흠치교 교인으로 활동하다가 1967년 9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김만암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각주
- ↑ 우주의 가을철에 지상에 강세한 인종상제에 의해 '후천개벽'이 일어난 후 탄생한다는 증산교의 지상낙원.
-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