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규

金大圭.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8년 11월 9일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7일 청송 주치(周峙)와 울산 불영사(佛影寺)에서 경상도와 강원도 일대의 지사들과 회합하여 의거의 기치를 올릴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동지 규합을 호소하는 격문을 지어 살포하여 의병 5백 명을 모병하였다. 곧 그들에게 적절한 무술훈련을 실시하여 실전에 대비하였다.

1906년 2월 영양군 입암면 교동의 자택에서 의진의 부서를 확정하고, 김대규는 도포장(都砲將)에 피선되었다. 이후 진보 오누지 전투에 참전하하여 일본 헌병 무등(武藤)을 비롯한 적 수 십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1906년 5월에는 울진 죽변 왜관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했으며, 8월에는 잔류병력을 정비하고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의병장이 된 김대규는 휘하의 병사들을 훈련시켜 전력을 보강하여 전투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이르러 병왕동(屛王洞)에서 출동한 왜적을 맞아 격전을 전개하였으나 역부족하여 적에게 사면이 포위되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에 그는 야음을 틈타 물 속으로 뛰어들어 수영으로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태백산에 의지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였다. 이에 일본군은 1907년 11월 21일 인근의 산악지대에 불을 놓는 방화작전을 단행했다. 김대규는 불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대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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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