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1880년)

金圭植.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0년 8월 27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천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경북 안동에서 류인식·김동삼 등이 설립한 협동학교(協東學校)의 교사로서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이후 신민회에 가담한 그는 1911년 김형식(金衡植)·이형준(李衡濬) 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군기지 개척에 노력하였다. 이후 국내에서 일제가 신민회를 탄압하기 위해 105인 사건을 조작해 수백 명의 인사들을 구금했지만, 그는 사전에 해외로 이주한 덕에 화를 모면했다.

이후 경학사(耕學社)·부민단(扶民團) 등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노력하던 그는 1919년 3월 부민단을 한족회(韓族會)로 확대 개편할 때 학무부장으로 선임되어 만주 이주 한인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였다. 또 같은 해 4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가 조직되자 여기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그는 한족회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대표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남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정의부는 1926년 말에는 17개 지방총관소를 설치하고 봉천성과 길림성에 살고 있는 한인 17,000여 호, 87,000명을 관할하였다. 한편 봉천성 무순역에서 동아관(東亞館)이란 여인숙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의 연락거점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오상현 안가촌으로 이주하여 중국 관내와 러시아 지역 동포와 연락하며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국내로 소환되어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안동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8월 1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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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