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하 (1879년)

金景河. 이명은 김영근(金永根), 김태진(金泰鎭).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79년 8월 18일 평안남도 강서군[1]에서 출생했다. 그는 본래 조병준의 문인으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에 참여하여 의주군감(義州郡監)으로 피임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최봉국(崔奉國)·최염(崔琰)·박한성(朴翰晟)·서성달(徐聖達)·박재근(朴載根)[2] 등과 함께 그의 집에서 조선독립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송부하자는 목적으로 대한 일신청년단(大韓日新靑年團)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어 강서군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내다 1927년 9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김경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후 강서군은 증산군, 남포특별시, 대동군 등으로 쪼개졌다.
  2.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박재근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