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페미니즘

(급진적 여성주의에서 넘어옴)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급진적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최초의 페미니즘 조류이자 급진적 페미니즘 이전의 거의 유일한 주류 페미니즘이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로 했는데 여성 투표권이 쟁취된 후 쇠퇴했다. 이후 68혁명의 영향을 받아 태어나 1960년대의 새로운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이다. 급진적 여성주의, 급진주의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불리기도 한다. 68혁명은 "나는 혁명을 생각할 때마다 섹스가 떠오른다."는 문구로 대표되는 성 해방을 위한 혁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혁명가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정작 여성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급진적 페미니즘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의의[편집 | 원본 편집]

자유주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자유주의 이전 정치에서는 권력투쟁에서 밀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은 이후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구분은 설사 권력투쟁에서 밀리더라도 사적 영역은 침해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큰 의의 중 하나이다.

그런데 급진적 페미니즘은 자유주의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에 문제제기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이다. 자유주의는 사적 영역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해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으로 보는데, 급진적 페미니즘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사적 영역에서의 지배구조가 정치투쟁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던 가정과 연애에서의 여성억압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내용[편집 | 원본 편집]

이전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참정권 등 제도적, 가시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음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특색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명백한 성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주의(sexism)라는 은밀한 형태의 차별을 폭로하고 극복하고자 한다.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하게 막는 선천적인 열등성과 지적,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면의 다양한 미숙함이 여성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일단의 믿음과 태도를 말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이런 믿음을 폭로하고 비판하며 극복하고자 한다. 이런 믿음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수학이나 과학에서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여 이기는 것은 비여성적이다. 여학생들은 수학에 재능이 없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는 부주의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여성은 남성의 성차별주의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에게 내재한 성차별주의도 문제 제기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자신들의 생각이 '족쇄'라는 점을 인식할 때까지 여성들은 그 족쇄를 부술 수 없다. 여성들은 성차별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는데 이를 인정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1]

이들이 시도한 전략은 다음과 같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들은 여성의 경험과 느낌을 이야기하기 위해 만나는 소집단을 결성하였다. 성폭행 범죄를 여론화하기 위해 행진과 시위를 했다. 여성 상담 센터와 학대받는 여성의 피신처를 개설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지도를 받았다. 여성이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나 다른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여성학 프로그램이 대학에 개설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에 대해 저항했다.[1]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본질적 평등과 동등한 권리, 동등한 기회, 동일한 임금 등을 강조한다. 이와 달리 급진적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서 최초로 차이도 강조했다.

섹스에 대해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사랑과 섹스를 분리하는 것에 문제 제기했다. 포르노에서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 육체로서, 성적 대상으로서 묘사된다. 여성은 고통, 굴종, 타락을 즐기는 것처럼 나온다. 포르노 같은 것에 주목한 것이 급진 페미니즘의 중요한 이론적 발전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현명하게 나이든 여자를 그리는 법이 거의 없다. 이런 문화와 이미지를 통해 여성은 체계적으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그래서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 대한 법적, 제도적 차별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광범한 '문화적' 투쟁을 아울러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1] 공통적으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에 걸맞는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급진적 페미니즘의 공통적 이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며, 둘째, 여성억압은 사실상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셋째, 여성억압은 가장 근절하기 어려운 억압 형태로 공산주의와 같은 계급사회 철폐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Jagger&Rothenberg, 1993) 공적 영역에서 기회 평등을 주는 제도 개혁만으로는 뿌리깊은 여성억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부장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비판[편집 | 원본 편집]

자유주의 페미니즘 계열의 비판[편집 | 원본 편집]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억압당하고 남성은 남성이기 때문에 억압하는 위치에 선다는 본질주의적 함정에 빠져들게 한다. 또 여성의 피해사실만 너무 강조해서 역사적 맥락과 사회, 문화적 조건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2] 리버럴 페미니스트인 베티 프리댄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인해 페미니즘의 그릇된 인식을 갖게 만든다고 비판 했다. 참고로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서 생겨난 게 바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다.

또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지나치게 여성 정체성에 집착해 이중잣대를 보이거나[3] 사각지대를 보지 못한다는[4] 것도 상당한 비판 여지 중 하나이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계열의 비판[편집 | 원본 편집]

래디컬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을 공통적인 피해집단으로 정의해 생산수단을 장악한 지배층 여성을 그렇지 못한 피지배층 남성보다 더 약자라는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전자본주의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가부장제는 다르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남성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우파지배층이 자본주의적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간주하고 남녀이간질을 조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전체를 공격하는 것은 우파지배층의 계략에 넘어가는 것이며 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여성우월주의와 완전 동의어는 아니지만 급진적 페미니즘의 하위 개념인 컬처럴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라고 볼 수도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 분파[편집 | 원본 편집]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1.0 1.1 1.2 테렌스 볼, 리처드 대거 (2006년 2월 5일).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아카넷. ISBN 9788957330708. 2016. 05. 25.에 확인.
  2. 이재경 (2007년 12월 05일). 《여성학》. 미래M&B. ISBN 9788983943897. 2016. 05. 25.에 확인.
  3. 예를 들면 남성혐오는 성립될 수 없단 개드립이 있다.
  4. 예시를 하나 들자면 남성에 의한 여성 성폭력도 물론 끔찍하지만 여성에 의한 남성 성폭력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로 인해 남성 피해자가 더욱 차별/소외를 받고 사법기관에서도 가해자의 경우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약한 형량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근데 혜화역 집회에선 반대되는 헛소리를 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침묵하고 그저 성폭력 문제를 남자 가해자 vs 여자 피해자의 구도로 범주화하는 경향이 크다. 결국 남자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돌봐주는 이들은 거의 없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