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섭

具正燮(또는 具正涉).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4년 6월 4일 평안북도 증산군 초전면 죽리에서 출생했다. 1905년 5월 8일 사이베리아(Siberia)호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하여 사탕수수농장에서 노동하였다. 1906년 3월 미주 본토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왔고, 11월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1907년 11~12월 철도 노동을 위해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하여 공립협회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상의 행적은 공립신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1]

그 후 대한인국민회 리버사이드지방회로 들어가 1912년 평의원, 1913년 구제원, 1914년 8월 법무원, 1917년 구제원, 국민의무금 수봉위원으로 활동했다. 1918년 리버사이드지방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부회장 정인영과 함께 지방회 업무를 이끌었다. 1918년 8월 모친이 별세한 뒤 신한민보에 소감을 밝혔고[2], 1919년 임원 선출시 지방회 재무 겸 법무원으로 선임되었다가 다시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2월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 식자기계 청장 동맹자 500인 모집 때 40회 동맹자가 되었다.[3] 1923년 7월 리버사이드에서 과채(果菜) 판매상점을 시작하였다.[4] 같은 해 10월 국내의 수재(水災) 피해를 돕기 위해 캘리포니아 남부 한인들이 각 지역 의연금 모집위원을 선정할 때, 리버사이드 위원으로 선임되었다.[5]

1933년 2월 하순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원탁회의에 참석하여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6] 그 밖에도 1908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운동자금을 기부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장자 구월도는 1941년 2월 미군에 입대하였고[7], 태평양 전쟁에 종군하였다.[8] 1944년경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1944년 10월 신한민보는 "구월도 중위가 생존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9]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구정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