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진

郭性鎭.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9년 10월 6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중정에서 출생했다. 그는 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19년 3월 1일 학우들과 함께 탑동공원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석광열(石光烈), 박금봉(朴今奉), 강세형(姜世馨) 등과 만세운동을 모의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하다가 강경에서 이미 시위를 준비했던 엄창섭(嚴昌燮), 추병갑(秋炳甲), 고상준(高相俊) 등의 권유를 받아들여 그들이 기획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태형 90도를 받았다.[1] 박금봉, 강세형 등과 혜성단(慧星團)을 조직하여 5년간 조직을 이끌어 일제로부터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1973년 5월 20일 논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곽성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22일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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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