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敏瑞.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7년 2월 12일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웅기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노동이민하였고, 1940년 10월 도쿄에서 백신도(白信道)의 주동으로 회령 출신 인사들이 비밀리에 회합을 열어 친목회를 조직해 상호단결과 민족의식을 강화할 때 참여해, 중등학교 교원이 되어 래 조선내에 특수대학을 창설하고 그 총장이 되어 인재양성을 할 수 있도록 연구 추진한다는 책무를 부여받아 활동하였다. 친목회 회원들은 직업상의 차별, 일본 도항(渡航)의 불편, 한국내의 의무교육 불비, 한국농촌 피폐, 특별지원병제도 강제 등과, 기만정책인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 등 일체의 모순을 타파하는 길은 오직 한국민족의 독립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1942년 4월 우리 조선독립(朝鮮獨立)그룹'의 현창석(玄昌碩)이 체포되어 친목회가 발각되었고, 그는 수사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에 거주했고, 1968년 4월 10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곽민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3월 27일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