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도수

孔道守.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8년 7월 4일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북동리(현 창원시 의창구 북동)에서 출생했다. 1919년 3월 설관수, 구재균, 김호원, 조윤호, 신갑생, 조희순 등과 함께 중동 청년회관에서 비밀리에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3월 23일 창원읍 장날에 거사를 벌이기로 했다. 그는 독립선언서 500여 장을 만들고, 송종민과 김호원은 태극기 500여 개를 만드는 등 시위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발발한 시위에 6,000~7,000여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자, 마산 중포병 대대와 진해 요항부 일본군이 동원되어 시위대를 탄압하고 주도자 31명을 체포되었다.

이때 그 역시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9년 11월 9일 출옥했다. 1964년 3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공도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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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